#2. 경남 통영에 있는 중소형 선박 제조업체 B사는 최근 유럽계 선사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았다. 올해 말이던 선박 인도 시점을 최소 1년 정도 뒤로 미루자는 것. 다행히 발주가 취소된 것은 아니지만 작년 이후 신규로 수주한 물량이 없어 당분간 작업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B사 관계자는 “그나마 우리는 상황이 나은 편”이라면서 “주변에는 발주 취소가 이어지면서 경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업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수출기업 500여개사를 대상으로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수출기업 애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럽 재정위기가 최소 내년 이후까지 계속될 것이란 응답이 62.9%에 달했다. 반면 올해 안에 끝날 것이란 의견은 37.1%에 그쳤다.
이에 대해 대한상의는 “유럽 재정위기가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의 긴축으로 당분간 경제 상황이 살아나기 힘들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대유럽 수출 여건도 점점 악화되고 있고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6개월 전과 비교할 때 ‘對유럽 수출 여건이 나아졌다’는 응답은 4.4%에 그친 반면, ‘나빠졌다’는 응답은 32.2%에 달했다. 6개월 후 전망에 대해서도 ‘수출 여건이 나빠질 것’(28.3%)이란 답변이 ‘나아질 것’(17.6%)이란 답변보다 많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번 조사 실시 과정에서 기존에 유럽을 대상으로 수출하던 기업들 중 작년 이후 유럽 수출을 중단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지난 12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지난 2009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77.6%까지 떨어진 것도 수출 둔화가 제조업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특별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응답 기업의 절반 가량이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48.9%)고 답했으며, ‘이미 대책을 마련했다’는 응답과 ‘대책 마련 중’이라는 응답은 각각 1.2%와 15.2%에 그쳤다.
대비책을 마련했거나 마련 중이라는 기업들도 ‘수출시장 다변화’(80.7%)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럽 관련 사업 축소’(9.6%), ‘결제통화 다변화’(9.6%) 등 소극적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으며, ‘비상경영체제 가동’(4.8%), ‘유럽 우량 자산 M&A'(1.2%) 등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조치들의 응답률은 낮게 나타났다.
유로존 붕괴를 점치는 기업(24.6%)들은 많지 않았으며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수출 증대를 꾀하기 위한 정책과제로 ‘중소기업·금융기관 자금 지원’(36.4%), ‘외환 보유고 확대’(25.5%), ‘외환시장 모니터링 강화’(19.4%), ‘재정 지출 확대 등 경기 부양’(13.7%) 등을 차례로 꼽았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1본부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對유럽 수출이 감소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정부는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유동성 지원 등 위기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기업은 사태 장기화 및 악화에 대비해 수출시장 다변화와 비상경영체제 수립에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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