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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산책] 새해 첫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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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새해 첫날 아침, 뭐할까 잠깐 고민했다.
산으로 가는 이가 있고(첫 해를 정상에서 바라보고 싶다며), 바다로 가는 이도 있고(물에서 떠오르는 첫 해를 보고 싶다며), 가족 또는 친지와 함께 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묘지로 가고 싶었다. 세수는 대충하고(왜냐면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검은 옷 꺼내 입고(양말은 신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망설이고), 차에 시동을 걸고 달려 나간다.

네이버 지도검색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이동거리는 대략 30킬로미터쯤.  
한편으로는 아파트 숲이 서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늘도 물이 흐르고 있다.(문명과 자연의 공존, 견강부회하면 '문질빈빈(文質彬彬)' 또는 '사야(史野)'일텐데 멋지지 않은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듯' 그렇게 한강은 흘러간다.
'올림픽'과 '자유'를 달리고 달려 이윽고 만난 곳이 파주. 대한민국 최대의 군사도시, 북한 땅을 맨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곳, 책과 명품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그 중간으로 쑥 들어서니 묘지가 즐비하다.  
산 자들은 '공원'이라 부르지만 찬 땅에 누워 길손을 맞는 주인들은 말이 없다.(말을 한들 삶으로 건방떠는 우리에게 그 말이 들릴 리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가운데 그가 누워 있다. 그 역시 말이 없다. 그러나 많은 말을 하고 있음을 나는 듣는다.(적어도 그 앞에 서있을 때만은 들려온다.)

그는 이따금 내 꿈에 나타난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불쑥 들어온다.(어쩌면 내가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내 잠을 깨우고 쓸쓸한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영면에 든 자가 산 자의 잠을 흔들어 깨우는 형국이다.
2년 전, 그러니까 2010년 첫 날에도 그랬다. 그는 뭔가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는 다시 물었다.

"너는 누구와 일하고 싶은가?"

역시 주저주저 하고 있는데, 그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맨발로 서늘한 마루를 지나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받아 마셨고, 한동안 소파에 앉아 그의 질문을 반추했다.  그리고 책장 앞으로 가서 구석에 꽂혀있는 책을 꺼냈다.
'세계 최고의 친구부자.' 표지에서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꿈속의 그는 자못 진지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현실의 그는 웃고 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1년6개월이 지났다.

올해 첫날 그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고(내가 부르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그래서 안부가 궁금했던 것이다.

새해 첫날. 산으로 가는 이도 있고, 바다로 떠나는 이도 있고, 가족과 또는 친지와 함께 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묘지로 가고 싶었다. 가서 그 질문을 듣고 싶었다.

"너는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려는가?"

대답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질문이라도 듣고 싶은 것이다. 왜냐면 새해 첫날이니까.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기자가 되는 가이드를 남겼다. 사무실이 아닌 술집에서 '허허실실 화법'으로 툭툭 던졌다. 다른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세 가지(돈, 시간, 건강)를 포기하면 된다는 것인데, 앞의 둘은 몰라도 마지막 하나는 아직도 고민중이다.(고민해서 되는건 물론 아니지만.)


박종인의 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보기




박종인 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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