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지난 11월 23일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패션예술학부, 패션모델예술학부 학생 30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패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는 주제로 특강이 있었다. 실무에 관련해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들을 이동섭, 채규인, 이청청 디자이너의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발제는 이동섭 디자이너가, 이청청, 채규인 디자이너가 응답하는 형식이다. 해당 내용은 당일 강의를 녹취한 것으로 주요 내용만을 발췌해 소개한다.


▲ 강의 중인 이청청과 채규인

▲ 강의 중인 이청청과 채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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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이동섭 :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계기가 있나요? 아버님 때문이라도 어릴 때부터 꿈꿨을 것 같은데요?


A_이청청 : 모든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아닙니다. 아버지를 가까이서 보면 오로지 디자인 작업에만 매진할 뿐, 다른 비즈니스에 일체 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10년 가까이 아버지는 결제라는 걸 해본 적이 없죠.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십니다. 저는 아버지의 브랜드를 좀 더 크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패션 경영, 비즈니스를 익혔던 것인데, 그러다보니 어느 날 내가 입고 싶은 옷, 남에게 입히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남성복을 주 분야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A_채규인 : 저는 어릴 때부터 거울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불만이라면 내 몸에 딱 맞는 예쁜 옷이 없더라고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일본을 오가며 일을 하셨기에 국내에서 일본 옷을 많이 입었는데 그것이 친구들이 입는 옷과 다른지라 놀림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다른 것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겠지요.



Q_이동섭 : 채규인 선생님은 디올 디자이너가 어떻게 됐나요? 모두 그 과정이 궁금할 것 같아요.


A_채규인 : 디올 인턴을 하고 있었을 때 제 디자인이 컬렉션에 많이 채택되었습니다. 저 혼자 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제 아이디어로 컬렉션의 70% 정도가 채워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존 갈리아노 컬렉션에 입사할 기회가 주어졌지요.
2개월 정도만 인턴을 하고 바로 정식 디자이너가 됐으니 운이 좋고 타이밍도 좋았던 것 같아아요. 보통 인턴은 1년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Q_이동섭 : 이청청 선생님은 이상봉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A_이청청 : 어릴 때 용돈은 적은데 입고 싶은 옷이 많아서 아버지 옷장에서 몰래 옷을 꺼내 입곤 했습니다. 당시 일본 디자이너 것도 있었고 그 옷들이 특이해서 놀림도 받았었지요. 사실 저는 정시에 출퇴근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바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었던 걸 보고 자랐기 때문이죠.
영국에 있을 때 ‘오즈왈드 보탱’이라는 브랜드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험해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 실장한테 다 맡겨놓고 콘셉트 회의 참여하고 가봉 과정 보고 그러더라고요. 아버지는 그러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제일 늦게 가는 사람도, 주말 내내 일하는 사람도 아버지였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그런 열정을 닮고 싶었습니다.


Q_이동섭 : 이청청 선생님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든 게 이채로웠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_이청청 : 제 컬렉션은 학교 동기랑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실은 이상봉 남성복 라인을 만들까 했는데 여러 이유로 아직 론칭 전입니다. 지금 남성복을 만들고 있기는 하나 협찬이나 룩북용으로만 나오고 시판되고 있지 않고요.


Q_이동섭 : 그럼 홍보는 어떻게 하셨나요?


A_이청청 : 이청청 : PR회사를 쓰면 너무 좋겠지만 자금이 없어 직접 홍보했습니다. 요즘은 잡지 같은 온라인이 강세라서 패션 블로거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고 룩북도 보냈지요. 그게 알려져서 런던컬렉션에 2년 동안 참여하면서 조금씩 주문도 들어옵니다. 저는 한 컬렉션에 15벌 내외로 소량 생산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생산이다 보니 제품 단가가 올라가는 단점이 있지만, 새로 시작하는 디자이너가 위험 부담 없이 자신의 컬렉션을 진행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 이청청

▲ 이청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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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이동섭 : 채규인 선생님, 세계 5대 브랜드라는 디올 컬렉션을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합니다.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A_채규인 : 한때 마리 앙투아네트 룩이 유행했었는데 그 시초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가 만들어져서 알려지기 6개월 전에 이미 디자이너와 에디터, 평론가들이 먼저 영화를 시사하고 컬렉션을 준비하지요. 그리고 영화를 개봉하면서 동시에 컬렉션을 공개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패션 잡지들이 관련 특집기사를 동시다발로 기사화하는 것이고요. 지원도 든든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대한 콘셉트를 잡는다고 하면 다음 날이면 마사이 추장의 실제 투구가 디자이너 앞에 대령해 있죠.


Q_이동섭 : 특정 브랜드 디자이너랑 자기만의 컬렉션을 할 때의 차이점을 듣고 싶어요.


A_이청청 : 자기 컬렉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본인이 해야 하죠. 큰 회사에 다니면 디자인이나 크리에이티브한 분야만 신경 쓰면 되지만 자신의 브랜드를 꾸린다면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아 미팅에 미팅을 거듭하는 식입니다. 자신의 창의력을 맘껏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적절히 맞춰야 하는 것도 있지요.


A_채규인 : 먼저 자신이 뭘 하고 싶고, 뭘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하나의 옷을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거쳐야 하고 불가피하게 팀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하겠지요. 공동 작업에서 너무 튀어 배척되기도 한다지만 남과 다르지 않음을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독창성이라는 게 패션의 장점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


Q_이동섭 : 마지막으로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_이청청 : 모두 아시겠지만, 패션계는 화려하지만 디자이너는 절대 화려하지 않습니다. 컬렉션은 화려하지만 그건 그때 뿐, 매일 일상 업무에 서류나 창고를 정리해야 하는 등의 실무를 해야 하죠. 그러기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안 됩니다. 시작했다면 힘들더라고 계속 꾸준히 노력해야 하겠지요.


A_채규인 : 같은 생각입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디자이너는 그 날개를 만드는 사람이지, 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죠. 학생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 프레젠테이션 할 기회가 많은데 말을 잘 하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합니다.



▲ 채규인과 이동섭

▲ 채규인과 이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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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_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부 학사, 동 대학 현대예술과 뉴 미디어 석사, 동 대학 예술과 공연 박사 과정 / 패션 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 저자 / 저서 나만의 파리, 유럽장인의 아틀리에, 뮤지컬토크 2.0 등 / 서울종합예술학교 뮤지컬예술학부 겸임교수


채규인_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졸 / 프랑스 파리의상조합학교 졸 /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ENSAD) 졸 / 크리스찬 디오르, 존 갈리아노 콜렉션 디자이너(5년)/ 2007년 남성복 브랜드인 ‘마미페흐 드 룩스(Mammiferes de Luxe)’ 런칭 / 동방신기의 4집 무대의상 작업


이청청_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칼리지 아트&디자인과 남성패션 전공/ ‘오즈왈드 보탱’디자이너 / 이상봉 제너럴 디렉터 / ‘A.헐루시네이션(A.Hallucination)’ 런칭-2010~2011 런던패션위크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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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선 기자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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