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꼬마가 와서 대추를 따네
늙은이가 문을 나와 꼬마를 내쫓네
꼬마가 홱 돌아서며 늙은이에게 하는 말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 거면서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손곡 이달 '박조요(撲棗謠, 대추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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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곡은 1500년대 말을 살다간 리얼리스트다. 시를 읽으면 뜻밖의 반전에 웃음이 솟는다. 물론 그 웃음은 씁쓸하다. 몇 알 따먹는다고 큰 일 날 일도 아니건만 저렇게 그악스럽게 아이를 내쫓는 늙은이가, 옛날 동네엔 꼭 있었다. 검추레하고 야윈 쭈그렁 얼굴에 심술보가 대추알보다 크게 붙어야 한다. 그냥 쫓는 게 아니라 대빗자루를 들고 아예 아이를 쓸어내며 내쫓는다. 아이들은 달아나는 시늉을 한다. 늙은이는 물론 몇 발자국 따라가지 못한다. 숨이 차기 때문이다. 그때쯤 아이들은 홱 돌아보며, 메롱, 욕지기를 퍼붓는다. 그런데 그말이 백번 진실이다. 대추나무처럼 몇백년 살지도 못할 목숨이란 걸, 가끔씩만이라도 환기한다면 좀 인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대추나무 아래의 덧없는 풍경 하나에, 들어있을 건 다 들어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이상국 기자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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