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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 평사원 열혈청년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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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강성준 부기장의 조종사 도전기

누구에게나 행운의 ‘무엇’이 있다. 행운의 숫자, 행운의 색깔, 행운의 장소… 제주항공 강성준(32) 부기장에게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그렇다. 제주항공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항공기 조종사의 꿈을 이뤘다. “회사 때문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사내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요, 국내 항공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사례로 꼽힌다. 정말?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제주항공의 재무팀 총무담당 직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바로 옆 운항승무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세워졌다. 기장·부기장들이 풀어내는 비행에 대한 흥미로운 담론이었다. 처음엔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에 머물렀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이 부풀어 올랐다.
어느 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항공기 조종사. 기술로 롱런할 수 있는 전문직인 동시에 자기계발까지 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그가 조종사라는 석자에 빠져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더 정확히 하늘 길의 운전을 종국에 좌우하는 ‘솜씨’의 비밀이 궁금했다. 이 비밀을 캐다 보면 근사한 파일럿이 돼 있을 것 같았다. 스물아홉 살의 2년차 사무직 사원 강성준. 2008년, 비행기 조종사를 향한 그의 모험과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불리한 조건 속 악바리 근성으로 꿈 이뤄
예상한 대로 항공기 조종사가 되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단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가 쓸데없는 짓 말라며 호통을 치시더군요. 그래서 우선 ‘일’부터 저질렀어요. 몰래 조종사 교육을 받으러 다녔고 발을 빼기 힘든 상황을 만든 후에 다시 말씀드렸죠. 저의 진지한 태도와 확고한 의지를 보시더니 그제서야 아버지께서도 인정하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객관적인 조건만 따진다면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 조종사는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거나 군인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그는 광고학 전공자였다. 관련학과를 나오지 않은 이상,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미국 유학 밖에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조종사가 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냈다.

“조종사 교육 양성기관이 있더라고요. 제가 조종사에 입문하려던 무렵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도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자격을 따내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신체검사를 기본으로 필기와 실기 등 총 9가지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강 부기장은 40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이 필요한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계기비행 과정, 사업용 조종사 과정을 거치면서 비행 경력 200시간을 넘기고 조종사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쌍발(2엔진 이상)기 자격을 추가로 취득하고 영어 자격도 갖췄다. 여기까지 통상 2~3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는데 그는 1년 반 만에 마쳤다. 그것도 매 시험과목마다 낙방도 하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회사 일에 소홀하기는커녕 사내에서 성실하고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판도 좋았다는 것이다.

“맡은 바 임무는 충실히 하자는 원칙이었어요. 저 때문에 조직에 지장을 주면 안 되잖아요. 평일에는 퇴근 후 대학 입시 준비생처럼 독서실에 다니며 새벽까지 공부했어요. 비행시간은 주로 주말에 채웠죠. 근무와 시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말 이 악물고 내달렸습니다.”

힘들었던 순간은 어떻게 견뎠을까. 무엇보다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걱정과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만은 가장 행복했다. 탁 트인 하늘로 날아오르면 가슴이 뻥 뚫리고 스트레스가 해소됐다. 비행시간을 차곡차곡 쌓는 재미와 뿌듯함도 있었다. 그는 제주항공 조종사 채용 때마다 입사 지원을 했고 두 차례 실패를 겪은 뒤 드디어 ‘부기장’ 타이틀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소통과 배려 중시한 조직문화 큰 도움됐죠”
지난해 9월 운항승무팀 부기장으로 인사발령이 난 후 올 1월 초부터 정식 비행을 시작한 그는 국내뿐 아니라 태국 방콕, 필리핀 마닐라와 세부, 홍콩, 일본 하늘을 위풍당당 누비고 있다. 강 부기장은 “내가 꿈을 품고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소통과 배려를 중시하는 제주항공의 조직문화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부서 간 영역이 딱딱하게 구분된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제주항공은 한 공간에 여러 부서가 어울려 있어 유연한 분위기입니다. 자유롭게 왕래하다 보니 서로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다른 업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높아지죠. 이런 부드러운 조직문화가 저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줬습니다.”

아무리 조종사 자격증이 있다 한들 회사에서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터. 하지만 자신의 도전에 격려를 보내고 조종사로 채용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김종철 제주항공 사장에 대해 그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 부기장은 ‘제2의 강성준’을 꿈꾸는 사내 직원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영웅이기도 하다.

항공기 조종사는 긴급사태나 예기치 못한 기상 변화에 대해 항상 준비해야 하며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매우 많다. 결항이나 비행 대기에 따라 근무 일정이 불규칙한 것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조종사가 매력적인 것은 역시 하늘을 날아오를 때 느끼는 벅찬 감격과 감동 때문이란다.

경력 1년 남짓한 아직은 풋풋한 신참내기지만 포부만큼이나 욕심도 많다. “비행 중 익숙치 않은 일이 생겨도 동물적 감각을 발휘해 능숙하게 처리하는 선배들을 보면 존경스럽죠. 앞으로 열심히 실력을 쌓아 부기장 경력에 오점이 남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다음 목표는 기장입니다.”

행운의 사나이로 불러달라는 강 부기장.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는 청춘의 동력으로 힘차게 달렸고 마침내 꿈을 이룬 ‘청춘불패’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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