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커플링은 없다". 선진국의 불황 재진입에 고민하는 신흥시장
[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신흥시장이 이중의 고민에 빠져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세계적인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금을 시장에 푼 대가가 물가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은 경기 회복은 커녕 다시 불황으로 빠져들며 또 한번의 유동성 확대 정책을 추구하고 있어 인플레와 경기침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8년과는 달리 지금은 신흥시장은 통일적인 정책을 펼치거나 선진국과 보조를 맞추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이 추구하는 또 한번의 유동성 확대정책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일자 기사에서 지난 2007년에서 2009년 미국이 불황에 빠졌을 때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이른바 ‘BRIC' 국가는 세계 경제의 엔진이었지만 지금은 신흥시장이 세계 경제를 구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이후 미국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때 중국은 연간 7.9% 성장했고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의 85%가 신흥시장 국가에서 이뤄졌다.
금융위기 당시 약 870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쏟아부은 이들 신흥시장국가들은 그 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인상했고 중국, 인도, 브라질의 성장률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미국, 유럽, 아시아 모두 제조업 생산이 지난 2009년 중반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JP 모건의 전세계구매관리자지수(PMI)는 7월의 50.7에서 8월에는 50.1로 떨어져 사실상 성장이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 지수는 50.6에서 48.5로 떨어졌으며 중국의 PMI도 29개월래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3개월래 최저치, 한국과 대만은 급격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크레딧스위스은행의 아시안 이코노미스트인 로버트 프리어완데스포르데는 “유감스럽게도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미국과 유럽의 경기에 취약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매관리자지수 컨설팅 회사인 마킷의 컨설턴트인 크리스 윌리엄슨은 “이는 지난 2009년 10월 시작된 제조업 회복이 끝났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가 목전의 고민이라면, 인플레이션은 이미 몸 안의 질병이다. 지난 2009년 봄 G20 정상회담에서 전세계적인 유동성 확대정책을 합의한 뒤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풀어넣은 결과이다. 올해들어 이미 0.25%P씩 3번의 기준금리 인상과 여섯차례의 지급준비율 상향 조정을 단행한 중국은 여전히 물가상승률(7월 CPI 6.5%)이 낮아지지 않는 만큼 물가안정을 위해서라면 추가 긴축 카드도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도중앙은행(RBI)는 높은 물가상승을 완화하기 위해 2010년 이후 18개월 사이 11번이나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달 26일에도 RBI는 기준금리인 재할인금리(레포금리)를 7.50%에서 8.00%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이같은 신흥시장의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인상이 보여주는 신호는 더 이상 선진국의 유동성 완화정책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 1일 “경제 성장보다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고 중국중앙은행은 올들어 3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추가 금리인상 조처를 시사하고 나서 중국이 유동성 확대 정책에 동참하리라는 관측을 무산시켰다.
이에 반해 물가 상승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은 지난달 31일 예상밖의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정책의 초점을 물가에서 경기로 옮긴 것은 유럽과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 것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12.5%에서 12.0%로 하향조정하면서 최근 주요 글로벌 경제블록이 성장률 전망치가 큰폭으로 하향조정된 것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신흥시장마다 경제 위기의 조건이 다르고 그 대처 방안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런던 소재 HSBC 홀딩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테픈 킹은 “지난 몇 년간의 정책에 의존한 호황이 가까운 시일내에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이제 다시 한번의 구제금융을 신흥시장들이 어떻게 편승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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