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적장에게 보낸 편지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서력 612년, 1월의 쌀쌀한 겨울바람이 요동땅에 휘몰아치던 무렵, 수(隋)나라의 양제(煬帝)는 113만명의 대군을 직접 이끌고 제 2차 고구려 침공에 나섰다.
1차 침공 때 요하의 진흙탕 속에서 수십만 대군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몰살당했던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삼아 이번엔 땅이 얼어붙은 겨울을 택한 것.
3월13일 요동의 동쪽을 흐르는 요수에서 수나라 침공군은 고구려의 강력한 방어선에 맞닥뜨려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 1달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4월 15일 마침내 도강에 성공했지만 요동성 안으로 후퇴해 꽁꽁 숨은 고구려군은 요지부동이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양제는 중국 최고 명장중 하나였던 우중문에게 별동대를 주고 요동성을 우회해 평양성을 곧바로 때리도록 한다. 수나라에 우중문이 있었다면 고구려엔 을지문덕이 있었다.
몸 놀림은 날쌔고, 성품은 침착했으며, 계책에 능했던 지장 을지문덕은 싸우는 족족 일부러 치는 척하며 우중문의 별동대를 평양성 외곽까지 깊숙한 곳까지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날 밤 을지문덕은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적장 우중문에게 품위와 예의가 한껏 묻어나는 문장으로 한통의 편지를 날린다.
'신기한 그대의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네. 전쟁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 바라오'
정신없이 을지문덕의 꽁무니를 뒤쫓느라 지칠대로 지쳤던 우중문은 등골이 오싹했다.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 닫은 것. 수나라 군대는 곧바로 황급히 퇴각을 시작했지만 청천강을 절반쯤 지났을 무렵, 매복해 있던 을지문덕의 기습으로 수나라 군대는 대패 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살수대첩이다.
현대백화점이 대구점을 오픈하며 달구벌 침공을 개시 하자 이미 그곳에 터전을 잡고 있던 롯데백화점이 축하 현수막을 걸었다.
심지어 이철우 사장은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덕담까지 건네고 현대백화점 대구점의 매장을 둘러보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치열한 경쟁관계인 백화점 업계가 선의에 경쟁을 벌이려는 훈훈한 미담처럼 생각 하는 모양이지만 과연 당사자들의 속내도 그럴까?
롯데는 누가 뭐래도 유통의 최강자. 게다가 대구를 비롯한 경상북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선발주자다.
현대백화점은 서울지역에서야 제법 이름을 날릴지 모르지만 지방에 대한 장악력은 백화점 업계 중에 제일 약한 편. 현대 입장에서 대구 진출은 적지에 너무 깊숙이 들어간 셈이다.
현대의 대구 진출을 축하 한다는 롯데의 현수막은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인사치레 같다. 쉽게 말해 '이곳은 이미 우리 터전' 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남이 닦아 놓은 터전에 발은 들인 현대백화점. 영토 확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이기에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달구벌에서 강자 롯데에게 도전장을 던진 현대가 고구려에 발을 들여놨다 부서졌던 수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지 자못 흥미 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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