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대중이나 민중의 지지를 업고 자라되, 끝은 언제나 특정 집단의 이익과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좋은 포퓰리즘' 운운은 정치가의 교설(巧說)이거나, 지식인의 말장난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 진정성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좋은 포퓰리즘'이란 용어는 '착한 악마'와 같은 형용 모순에 불과하다.
회사를 비호하거나 크레인 농성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적인 주장만으로 노동운동의 지평이 넓어지길 기대한다면 그만한 위선도 없다. 진보의 위선은 보수의 부패 이상으로 위험하다.
셋째, 복지와 포퓰리즘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무척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해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정치의 한 수단인 데 반해, 복지는 정치의 최종 목표라는 점에서 그 근본부터 다르다.
현실 정치에선 복지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거나, 반대로 포퓰리즘을 복지정책이라고 강변하는 가당찮은 정치인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복지정책과 포퓰리즘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땐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하나는 "그 돈 어디다 쓸 건데?" 또 하나는 "네 돈이라면 그렇게 쓸래?"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이 돌아온다면, 적어도 국민들의 세금을 허투루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복지를 핑계로 제 생색만 내는 정치인들도 발붙이기 힘들 것이다.
이를테면 포퓰리즘 전사(戰士)를 자처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당신 재산을 털어서 주민투표 비용 180억원의 일부라도 분담하겠느냐"를 질문해보고,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당신의 돈을 내서라도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느냐"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플루타크트 영웅전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정치가는 위험하다. 대중의 뜻을 추종하면 대중과 함께 망하고, 대중의 뜻을 거스르다 보면 그들 손에 망하기 때문이다."
어찌해도 망하는 게 정치인이라면, 정치하는 사람 혼자 망하는 게 포퓰리즘으로부터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길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건 오 시장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의철 기자 charli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