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은 천연 줄기세포 암도 다스리는 트로이목마”
정세연 초아재 천연한의원 원장
새싹 하면 떠오르는 것? 새싹비빔밥 정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새싹이 그냥 몸에 좋다니까 먹었다. 그런데 그 ‘작고 어린 것’의 힘이 대단한가 보다. 병을 치료할 수 있단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좋은 걸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서울 도곡동 초아(草芽, 새싹)재 천연한의원에서 ‘새싹 한의사’ 정세연(35) 원장과 새싹만큼이나 생기발랄한 인터뷰를 가졌다.
한의사로 연구에 매진하던 이 여인, 어느 날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기존 마른 약재로 우려낸 한약이 아닌 천연의 새싹을 약으로 쓰겠단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암 환자 치료 도중 무를 처방하다가 무싹(무순)을 써보니 효과가 배가되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정세연 원장은 국내 한의사 가운데 새싹 치료를 하는 유일한 한의사로 평가받는다. 아직은 대중에게 새싹 치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경험한 환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많이 알려졌다.
새싹을 한의학에 접목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그였기에 대면한 순간, 조금은 깐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선입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유명한 한의사라기보다는 자상한 이웃집 언니, 청아하고 예쁜 소녀 같았다. 그러나 한의학에 대한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할 때는 열정과 강한 카리스마가 물씬 풍겼다. 무엇보다도 왜 새싹 치료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藥食同源’ 사상서 깨우친 새싹 효능
몸이 약했던 어린 시절, 한약을 먹고 나았던 그는 자연스럽게 한의사의 꿈을 마음에 품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을 때였다. 폐 기능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약 대신 카모마일 차를 처방해 줬다. 차를 마시고 그 약물을 물에 끓여 수증기를 깊이 흡입(훈증법)하라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반신반의 하며 일주일 동안 처방대로 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약을 먹지 않고도 낫지 않았는가. 자연 요법을 통해 몸이 스스로 치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천연물 치료에 흥미를 느끼고 한의학 공부에 뜻을 굳혔다.
한의사가 돼 훗날 그가 새싹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동양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말에 100% 동감하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약과 음식의 뿌리(근원)는 같다는 의미다. 음식이 곧 약인 셈이다. 강남 차병원 대체의학대학원 조교수로 음식 치료를 담당했던 경력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한약재들 가운데 117가지가 식품입니다. 어르신들의 퇴행성 관절염 치료에 쓰는 약재가 ‘의이인’(율무)이예요. ‘적소두’라는 약재도 있죠. 붉은 콩이란 뜻으로 팥이예요. 약재이면서 음식인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약식동원 사상을 직접 실천해 보자는 결심이 섰죠.”
정 원장은 우리가 흔히 먹는 식재료로 개인의 체질에 맞게 약 레서피를 만들어 처방전을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식의학 맞춤 치료’는 초아재를 관통하는 핵심이며 여기엔 자연 치유력을 도와 몸이 스스로 살아나게 하는 원리가 깔려 있다. 이쯤에서 그는 또 하나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갓 잡아서 조리한 생선 요리가 냉동보관 생선을 사용한 요리보다 맛과 영양이 더 좋지 않을까. “약재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마른 재료 대신 물기 있는 재료를 그대로 쓰기로 했죠.”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일반적으로 한약은 건조된 약재에 물을 넣고 달여서 쓰는데 생(生)천연물은 기존의 과정이 통하지 않았다. 물을 끓이면 100℃가 넘게 돼 미네랄 등 각종 영양소가 파괴되고 효과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전통적인 중탕법에 눈을 돌렸다. 물을 섞지 않고 중탕해 천연물의 정수만 추출하는 방법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천연물을 넣고 뚜껑을 닫은 들통을 더 큰 통 안에 담은 뒤, 주변을 물로 채운다. 이렇게 끓이면 안에 있는 통의 내부 온도가 60℃ 수준을 유지하게 되므로 영양소를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유레카(알았다)!’를 외칠 만한 전환점을 맞았다. 천연물을 다루면서 새싹의 놀라운 효능을 발견하게 된 것.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단단히 뻗은 성체가 되기까지 종자 안에는 성장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가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종자의 에너지를 이용해 틔운 새싹은 다 자란 식물에 비해 영양 성분이 3~4배 정도 더 많이 함유돼 있어요. 뿌리로부터 받은 영양과 줄기의 순환으로 인한 모든 좋은 성분이 농축돼 있답니다. 일종의 천연 줄기세포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우리나라 고서에도 새싹의 좋은 점이 소개돼 있다”며 <조선요리학>이란 책을 보여줬다. 어린 싹과 잎사귀는 그 자체로 세포가 신선하며 인간의 생기를 공급하는 데 좋다고 적혀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 결과 역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자에게 두 달에 걸쳐 브로콜리 싹 70g을 매일 먹도록 했더니 감염과 염증 수준이 나아졌다.
브로콜리보다는 브로콜리 싹에 항암활성 및 면역 활성 작용을 하는 설포라페인이 20배나 많이 들어 있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새싹은 몸에 들어와서도 분해가 잘 돼 흡수력이 높다.
거부감 없는 암 재활치료 새로운 대안
녹두싹(숙주나물), 메밀싹, 밀싹, 부추싹, 브로콜리싹, 적무싹, 클로버싹 등 새싹에도 종류가 많다. 그렇다면 새싹으로 어떻게 약을 처방할 걸까. “예를 들면 십전대보탕을 이루는 한약재들을 비슷한 식품 및 새싹으로 치환하는 식이예요. 이뇨제 역할을 하는 약으로는 팥싹을 이용하고요.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해 쓰는 약재인 부소맥(밀 쭉정이·껍질)을 통밀로 대체하면 효과는 더욱 드라마틱해지죠.” 초아재는 환자에게 각종 천연물을 중탕으로 달여 우러난 엑기스 물을 팩에 담아서 제공한다. 워낙 재료가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약재비가 비싼 편. 증세가 심한 초기에는 물약을 처방하고 이후 좀 나아지면 과립 형태로 치료한다.
정 원장이 처음 새싹 치료를 한 대상은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30대 여성이었다. 피부 여기저기에 붉은 트러블과 가려움증이 동반된 상태였다. 바르는 약을 쓰고 싶었지만 시험관 아기를 시도 중이라 음식 요법을 택하고 한의원을 방문한 환자였다.
정 원장은 메밀싹, 보리싹, 미나리를 중심으로 숙주나물, 머리를 뗀 콩나물, 가시오이, 도라지 등을 처방했다. 치료 효과는 탁월했다. 지저분하게 피부를 덮고 있던 트러블이 한 번에 깨끗이 싹 들어갔으니까. 이로써 새싹에 대한 그의 확신과 자신감은 단숨에 날개를 달았다. 새싹이 지닌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내고 성공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스토리가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지금이야 상황이 좋아졌지만 처음엔 환자들이 약이 아니라 음식과 새싹 이름이 적힌 처방전을 보고 코웃음 치더란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짓’이라며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줬다.
초아재 환자의 70%는 암 환자다. 그래서 카테고리로 운영되는 ‘암 재활’에 관심이 쏠렸다.
정 원장은 “암 환자에게는 수술, 항암 및 방사선 치료 등 화학 요법으로 인해 신체 방어력이 저하돼 있으므로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순하고 편안하며 부드러운 치료, 이른바 그가 명한 ‘트로이 목마 전법’이다.
“사람의 몸이 참 영리한 것 같아요. 몸은 비자기(非自己)가 들어오게 되면 방어해서 내보내는 기본 작용을 해요. 친숙하지 않은 것이 강하게 쳐들어 왔을 때 세포 흡수가 떨어지죠. 해열제 복용 후 열은 내리지만 간이 망가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반면 익숙한 것일수록 흡수는 좋아지죠.”
그는 간암, 폐암, 위암, 갑상선암, 유방암 등 각 암의 특징에 맞춰 유기농 먹을거리와 새싹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평소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몸속에서 거부 반응이 없고 침투가 쉽다는 게 장점이에요. 이를 통해 면역력 증강, 통증 관리, 식욕 저하 및 메스꺼움 개선, 림프부종 관리를 하는 겁니다. 고통스러운 화학적 치료 탓에 거칠어진 암 환자들의 피부까지 윤기 있어지더라고요,”
그의 관심사는 또 다른 곳으로 가지를 치고 뻗어나갔다. 이번엔 화장품이었다. 피부가 먹는 밥이 화장품→섭취 가능할 만큼 순한 천연 재료 사용→항노화 콘셉트→강한 생명력과 왕성한 생기 필요→최상의 재료는 어린 식물, 새싹. 이어지는 연결 고리 끝에 정 원장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천연의 기초화장품을 만들어 보자’ 내용물을 발랐을 때 겉돌면 안 되고 피부 세포 곳곳에 침투할 수 있느냐가 관건. 뛰어난 분해력 및 흡수력을 가진 새싹은 화장품 원료로도 적격이었다. “암도 노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포가 예쁘게 늙어야 하는데 이상분열을 하는 게 암이거든요.
결국 안티 에이징보다 웰 에이징과 관련이 있는 거죠. 새싹의 힘이 피부에 닿으면 피부 재생력이 좋아져 피부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요즘 피부암 환자도 늘고 있어요. 암이 생기지 않도록 노화 예방과 생기 부여를 할 수 있는 화장품을 만들고 싶었죠.”
올 연말 애경과 손잡고 새싹 화장품 출시
그 일환으로 정 원장은 최근 애경과 손잡고 새싹 화장품 개발에 나섰다. 초아재한의원과 애경산업 중앙연구소가 ‘항암치료 후 환자의 조리를 위한 건강보조식품 분야 공동연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
애경의 천연물 관련 연구 성과 및 기술력에 초아재 한의원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란 게 정 원장의 얘기다. 새싹 성분 기초화장품은 올 연말께 출시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너뷰티 제품 등 식품소재 개발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라며 머릿속으로 목표 리스트를 정리하는 눈치다. 그만큼 욕심이 많아서일 테다. 우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SJ테라푸드와 MOU를 맺고 식의학에 대한 학문적 영역을 체계적으로 넓히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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