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품바타령에 세상 시름 씻어 볼까나, 연꽃향에 잊어 볼까나
늦여름 무안으로 떠나는 향기여행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얼~씨구씨구 들어가~안다 저헐 씨구씨구 들어가~안다/자악년에 왔던 각설이가 주욱지도 않고 또 왔네/어허 품바가 잘도한다 어허라 품바가 잘도헌다ㆍㆍㆍ.'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888번지. 이곳에 '품바발상지'라는 돌비석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주변에는 '망초가 꼈다', '쑥대밭이 됐다'라는 말에 나오는 망초와 쑥대가 가득하다. 망초나 쑥대는 폐가터에서 많이 자라는 식물. 예전에 걸인들이 모여 살던 이른바 '천사촌'이 있던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름도 끝자락에 접어드는 이맘때 무안을 찾으면 특별한 향기를 느껴볼 수 있다. 살기는 팍팍해지고 감정은 점점 메마르는 세상, 신명나는 품바타령으로 메마른 가슴을 씻어 낼 수도 있고, 은은하게 전해지는 연꽃향에 취해 잠시 세상사를 잊어 버릴 수 도 있다.
▲'품바'의 고장, 신명나게 놀아놀까나
의산리 일대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연극 '품바'의 무대다. 일로읍내 공회당은 품바가 처음 공연됐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 의산리 888번지 일대는 '천사마을(천사촌)'으로 불렸다.
일로역이 있던 곳에서 동남쪽으로 무안중학교를 지나 인의산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공동묘지 아래가 천사촌이다. 왜 이곳에 걸인들이 모여들었을까. 얘기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목포항이 개항하면서 당시 사실상 걸인과 같았던 실직자들이 목포로 몰려들었다. 부두 하역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고. 너무 많이 몰려들자 일제는 이들을 내쳤다.
실직자중 일부는 유달산으로 몰려들었고 이곳에서도 여의치 않은 많은 걸인들은 일로읍 의산리까지 옮겨와 움막을 짓고 터를 잡았다. 당시 일로 일대는 일로역 주변으로 5일장이 크게 열렸다. 우시장도 섰다고 한다.
처음 천사촌이 생길때 어느해인가 한해(寒害)가 들었는데 이곳 일로에만 유독 걸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주민대표들이 "어찌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으로만 모여드느냐"고 걸인들을 찾아 불평했다. 이때 걸인들은 "타향에서 괄세 받고 푸대접 받다가 이곳 일로에 오니 문전박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누었는지라, 고향에 온 기분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앉았다"고 답했다. 이후로 주민들은 걸인들을 더욱 도왔단다.
상황극 '품바'의 주인공 천장근은 일제시대 목포에서 부두노동자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실어나르는 공출미 때문에 파업을 일으켜 수배를 받던 중 일로로 피신해 걸인행세를 한 실존인물이다.
6ㆍ25때 좌익들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을 잃고, 자유당 시절에는 100여명을 휘하에 두고 '천사회'를 조직, 율법을 세우고 민폐를 끼치는 자는 엄하게 다스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품바'는 일제시대, 해방, 6ㆍ25를 거쳐 대한민국 현대사의 다양한 정치적 상황 아래 주인공 천장근이 겪는 인생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천사촌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품바'를 만든 김시로 선생의 생가가 있다. 김시로 선생은 지난 2001년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녹슨 철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오 자네 왔능가!'라는 현판이 손님을 맞는다.
김시로 선생은 1981년 첫 선을 보인 이래 1996년 한국 연극사상 최초 최장기 공연, 최대관객 동원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수록되는 과거를 창출해낸 대한민국 대표 연극을 만든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걸인들의 친구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향기가 머무는 선계ㆍ 꽃중의 군자 백련
백련 축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일로읍 복용리 회산백련지. 저수지는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른 연잎으로 뒤덮여 있다.
넓은 잎방석을 깔고 앉아 빠끔하게 고개를 내민 연꽃이 등불처럼 환하다. 연꽃향기에 취해 탐방로를 걷고 있으면 선계로 빠져 드는 듯 하다.
백련지를 찾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여는 연꽃단지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연꽃은 가뭄에 콩 나듯 있고, 땡볕에 사람구경만 하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백련지 입구의 유리온실을 볼 때만 해도 '흔해 빠진 인공적인 관광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탐방로를 따라 유리온실을 휘돌아 서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눈이 닿는 사방의 끝은 모두 녹색이요, 향기를 머금은 연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연꽃은 진흙속에 뿌리를 내고 흙탕물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상징하기도 한다.그 중에서도 순백의 맑은 빛을 담아 청초하고 고결하게 피어나는 백련은 '꽃중의 군자'로 불린다.
회산 백련지는 이름그대로 백련이 가장 많다. 백련은 꽃송이가 크고 탐스러울 뿐만 아니라 꽃 색깔이 발그레한 홍련과 달리 뿌리가 매우 굵어 식용으로도 유용하게 쓰인다.
꽃을 보려면 아침이 좋다.새벽 이슬을 머금은 연꽃은 더없이 아름답다. 연꽃은 해가 떠올라 햇살이 강해지면 꽃잎을 닫는데, 오후 두세시 이후에는 봉오리 형태로 돌아간다.
백련은 9월까지 하나가 피고 지면 다른 하나가 피는 순차적인 배열로 연못 가득 하얗게 만발한 백련꽃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하기 쉽다. 하지만 푸른 백련잎이 무성한 연못을 가로질러 길를 걷다보면 녹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에 아쉬움은 이내 사라진다.
무안=글ㆍ사진 조용준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 타고가다 목포IC를 지나 일로IC를 나와 청호ㆍ일로 방면으로 우회전(815번 지방도), 회산백련지, 나주, 무안읍 방면으로 좌회전(삼일로)해 일로읍용산리 무안방면으로 가면 된다.
△먹거리= 낙지를 빼놓을 수 없다. 가을이 제철이지만 여름에도 그 깊은 맛을 볼 수 있다. 기절낙지를 전문으로 하는 동원(망운면 목동리, 061-452-0754)이 전문점이다. 꼬치에 꿰어 통째로 구운 낙지인 낙지호롱은 보통 1만원 정도 한다. 도리포횟집(061-454-6890)이 이름나 있다. 몽탄면 사창리에는 돼지짚불구이가 별미다. 짚불에 석쇠로 순식간에 구워낸 돼지 삼겹살을 칠게장, 양파김치에 싸먹는 삼합이다. 두암식당(061-452-3775)이 꽤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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