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문자 화백 인터뷰

윤문자 화백과 그의 제자이자 딸인 김얼씨가 서궐도 모사복원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궐도는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궁궐이었던 경희궁의 전각 및 궁궐 전경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 배치도다.

윤문자 화백과 그의 제자이자 딸인 김얼씨가 서궐도 모사복원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궐도는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궁궐이었던 경희궁의 전각 및 궁궐 전경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 배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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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궁중화 모사작업에 빠진 날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다. 사실 전생에 도화서 화원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생각할 때도 많다. 원형모사는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라 원본을 제작한 작가의 영감과 궁궐 생활상을 잘 담아야 하고 수많은 훈련을 거쳐야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다"


모사? 왠지 진본과 위작문제라고 언뜻 느껴질 수 있지만 그와는 다른 이야기다. 궁중회화에서 모사는 그림이 낡아 훼손되거나 잃어버렸을 때 이를 전승하기 위해 행해졌다. 조선시대 후손들은 옛 그림들을 통해 조상의 자취를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궁중회화의 모사작업은 현재 그 맥이 거의 끊길 상황이다. 대한제국, 식민시대를 거치는 동안 조선의 도화서는 사라지고, 과거 왕실의 역사적 사료가 될 여러 문집들이나 문화재적 가치가 큰 그림들이 해외로 도난당하거나 훼손당했다. 그러면서 모사복원분야는 아직까지 제대로 양성되지 않은 실정이다.


그나마 희망은 있다. 윤문자 화백(62·덕산 전통회화 연구소 소장)처럼 궁중회화 모사복원에 공을 들여온 이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요즘 들어 궁중왕실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커져가는 분위기다. 최근 ‘의궤’란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는 지난 4~5월 프랑스로부터 영구임대 방식으로 들어온 ‘외규장각 의궤’나 한일 도서협정으로 올 반환되는 ‘조선왕실의궤’ 덕분도 크다.

11일 경기도 분당 죽전의 윤 화백의 작업실을 찾았다.


◆ "누군가 그리고 있지 않는다면..사라질까 걱정했다"


분당 작업실에서 윤 화백이 모사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분당 작업실에서 윤 화백이 모사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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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화백의 작업실에는 각종 궁중회화 모사본들이 진열돼 있었다. 또한 전국방방곡곡, 때론 일본을 오가며 구해 온 안료인 석채와 분채들도 빼곡히 쌓여져 있었다.


그는 ‘봉수당 진찬도’ 모사복원본을 꺼내 보였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행차한 가운데 주요 행사로 혜경궁 홍씨의 61세 회갑연 진찬례를 올리는 잔치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위엄이 넘치는 왕실 행사지만 오밀조밀한 군상들과 오방색들의 알록달록함이 어우러져 마치 만화를 보는 듯했다. 흥미롭게도 정조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인물은 그려 넣지 않는 조선시대 기록화방식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이 그림 진본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봉수당 진찬도(채색복원도)

봉수당 진찬도(채색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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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실에는 정조대왕 능행도, 명성왕후국장도감의궤, 서궐도, 경복궁 교태전의 백동자도 등 각종 모사복원본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윤 화백은 20대 후반께 민화를 시작하면서 동양화에 입문했으며, 궁중화에서 민화와는 다른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진본을 가져다 모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그림을 분석하고 사료를 찾으며 그려온 시간이 벌써 30여년이 됐다고 술회했다.


윤 화백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빠지게 됐다"며 "특히나 의궤에 담긴 그림들이나 궁궐에 설치된 그림들이 훼손돼 전수되지 않는다면 후손들은 영영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의 작업은 사명감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오랜 시간동안 훈련해온 덕분에 그가 박물관이나 정부기관에서 의뢰받아 복원해온 궁중회화 작품들도 벌써 100여점이 넘는다.


그는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행사같이 중요한 일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의궤나 어진의 경우 똑같은 그림을 여러 건 그리거나 모사해 서로 다른 지역의 사고(史庫)에 보관한 전통이 있었다”며 “최근 한일도서협정의 일본 국회통과에 따라 연내 반환되는 책 중 하나가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인데 같은 의궤를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도 모사복원본이다. 태조 어진은 1410년에 처음 제작됐다가 1763년(영조 39년)에 한차례 수리를 거치고 나서 1872년(고종 9년)에 조중묵이 모사했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어람용) 진본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어람용) 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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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어람용) 모사복원본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어람용) 모사복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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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 화백은 모사복원의 첫 교과서가 될 ‘회강반차도 원형모사복원 보고서’도 발간했다. 회강반차도는 조선시대 왕세자와 그의 스승을 비롯한 관원이 모여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장면이 담긴 그림이다. 이를 모사해 복원하는 작업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과 함께 했고, 보고서에는 ▲진본상태검토 ▲사진촬영 ▲크기측정 ▲종이선별 ▲물감선별 ▲바탕처리 ▲배접 ▲건조 ▲색비교본작성 ▲채색 ▲장황 등 그동안 그가 이뤄낸 모사복원 제작과정의 매뉴얼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모사복원 분야 후학양성 시급한 때"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옛 그림들을 모사복원하고 이를 관람객들이 열람할 수 있게 개방하는데 적극적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궁중회화 원형모사 분야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 화백은 “모사복원 기술로 이름난 일본은 자국이 소장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그림들을 대부분 모사복원해 이를 전시하고 진본은 훼손되지 않게 수장고에 잘 보관해 놓고 있는 게 이미 오래 전”이라며 “우리는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도 모사복원 수업을 강의한 바 있었고, 인사동에서도 궁중회화수업을 개설한 바 있었으나 관심가지는 젊은이들이 없어 폐강되는 일이 잦았다”면서 “이 분야에 대해 정부차원에서의 지원도 절실한 때”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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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복원 분야에 일감이 생기더라도 해낼 사람이 없고, 수요가 있어도 당장은 무리라는 게 윤 화백의 평이었다. 창작이 아닌 궁중회화 모사는 원본 그대로를 잘 살리는 것이 관건이며, 오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 화백의 작업을 돕고 있는 제자는 현재 그의 딸 김 얼(33)씨 한명 뿐이다. 모사복원교육으로 유명한 일본 교토대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윤 화백은 김씨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궁중화 모사복원은 역사와 그 배경을 알고 우리 그림을 수없이 그려본 후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 자각한 다음에야 외국의 기술이 도움이 된다는 게 바로 그의 지론이어서였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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