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녹다운..고법 "키코, 법률상 문제 없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환 헤지 파생상품 '키코(KIKO)'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중소기업과 은행 사이에 벌어진 다툼에서 법원이 또 한 번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3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이종석 부장판사)는 주식회사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키코)계약의 무효 및 취소에 따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키코 계약이 발생가능한 모든 위험을 회피할 수는 없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기대이익에 대한 손실은 원고가 당연히 부담할 기회비용이고 다른 금융상품과 마찬가지로 신용위험관리비용 등을 계약금 자체로 기준 삼은 것은 부당치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측의 적합성원칙 내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주장에 관해서도 “고객도 자기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피고가 과다한 위험을 도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변론종결 후 원고 측이 참고자료로 제출한 독일 연방대법원의 ‘복잡한 상품에 대한 설명의무 정도는 본질적으로 은행과 같은 수준의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본 판례에 대해서도 법률상 자문의무를 전제한 독일과 달리 “우리 은행법상 단순 설명의무를 넘는 자문의무는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수산중공업은 지난 2008년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키코 계약으로 얻은 부당한 이익금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에서 재판부는 키코가 “환위험 회피에 부적합한 상품이 아니고,은행 측이 가져간 마진율 등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며 은행 손을 들어줬다. 이번 항소심도 키코가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된 '불공정 상품'인지와 은행이 사전에 기업에게 위험을 제대로 고지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수산중공업은 은행이 폭리를 취하도록 키코가 설계됐다고 주장해왔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이다. 중소기업들은 일단 환율이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면 은행에 물어낼 금액이 무제한적으로 불어나 기업에 불리한 불공정 계약이라고 그간 주장해왔다.
반면 은행 측은 이익에 상응하는 위험을 내재하고 있을 뿐 어느 일방에 불리한 상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키코가 한창 판매되던 2007~2009년 당시 원화 값은 안정적이었고,계약시점을 기준으로 원화 값이 폭락은 예상치 못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상품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는지를 놓고 양측은 날카롭게 부딪쳐왔다. 피해자들은 "통화옵션이 뭔지도 잘 모르는 고객에게 은행이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측은 "사전 고지도 했고, 원화 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던 2008년 3월부터는 수산중공업에 키코 계약을 청산하자고 권유했었다"고 반박했다.
한편,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날 항소심을 통해 키코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가닥을 잡음에 따라 그간 미뤄졌던 은행의 사기 혐의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기소 여부도 명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해 2월 이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 11개 은행 및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검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에 배당하고 1년 넘게 수사를 진행해 왔다.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가 장기간 진행된 점 등을 들어 곧 결과를 내놓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담당검사가 다른 부서로 전보되고, 당초 지난 2월 10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선고가 연기되면서 수사결과 발표 시점이 불투명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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