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안준영 기자] 차이나드림의 대명사인 신화파이낸스의 창업자 로레타 프레디 부시가 사기혐의등으로 기소되면서 미국 월가가 떠들석하다고 17일 월스트리트저널 (WSJ) 이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프레디 부시는 2명의 전직 회사 이사들과 공모해 회삿돈 5000만달러를 착복한 혐의로 지난주 미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사이 월가 '큰손'들의 피해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모펀드인 패이트리악 파트너스의 린 틸튼 회장은 프레디 부시와의 개인적인 친분만 믿고 2004년 신화파이낸스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이후 단 한주의 주식도 팔아치우지 못했다.

또한 신화파이낸스의 자회사에 5000만달러를 빌려주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이 자회사의 주식이 99%나 하락하면서 차용증은 휴지조각이 됐다.


미 슈퍼마켓 체인 거부인 억만장자 론 버클도 수천만 달러를 들여 신화파이낸스 자회사의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보았다.


지난해 5월 자회사 지분을 8.7% 보유하고 있을 당시 주식가치는 94% 폭락했다.


프레디 부시는 미국과 중국에서 차이나드림의 상징적인 인물로 통한다.


규정보다 꽌시 (인간관계) 가, 논리적인 대화보다는 한잔의 독주 (바이주) 가 비즈니스 성패를 좌우하는 중국에서 부시의 성공신화는 각별하다.


1958년 미국 유타주에서 8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부시는 16살때 첫아들을 낳은뒤 불과 3년만인 19살때 남편을 잃고 과부신세가 됐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은 "영어능통자 구함, 월급은 3000달러" 라는 대만정부의 구인광고였다.


1985년 20대 과부는 두 아이와 함께 훌쩍 대만으로 건너와 대만정부에서 곡물 조달 업무를 시작했다.


2년뒤인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대만 경제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부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 사업자를 겨냥한 컨설팅 회사인 '부시코프'를 세우고 대만정부에게 선물거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후 그녀는 중국 진출의 교두보인 홍콩으로 건너가 천부적인 사교술로 중국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넓혀갔다.


그로부터 10년 후 쌓은 인맥이 빛을 발하면서 그녀는 2000년부터 신화파이낸스라는 이름으로 자체 금융뉴스서비스 회사를 만들었다.


지수작성과 관리에 세계적 리더였던 영국 FTSE그룹, 다우존스와 협력관계를 맺었으며 프랑스 언론사 AFX, 미국의 마켓뉴스 지분, 아시아 비즈니스 뉴스 서비스 AFX-Asia 를 인수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중국 정부도 신화통신을 통해 신화파이낸스 지분을 60% 사들이게 된다.


외자기업에 보수적인 중국정부의 투자로 신화파이낸스는 중국에서 고공성장을 지속했다.


2004년에는 일본 도쿄에 3050만달러 상당의 IPO를 신청해 도쿄증권거래소(TSE) 벤처기업주식시장 마더스에, 2007년에는 미국 나스닥에까지 상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공신화는 여기까지였다.


신화파이낸스는 나스닥에 상장하자마자 세금탈루와 불법 거래 등 문제가 터졌다.


당시 캘리포니아 투자은행가 싱할에게 회사 인수의 뒤를 봐주는 대신 월 1만달러에 수익금 1%를 지불하는 불법거래 정황이 드러났고 이에 따라 미 세무당국이 조사를 벌인 것이다.


여기에 이번의 사기사건까지 연루되면서 일그러진 차이나드림은 중국 상장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만 다시 한번 확인한채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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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증권거래위원회 (SEC) 는 회계부정행위와 관련 수십개의 중국상장기업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안준영 기자 daddy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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