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부르는 아들의 '사모곡' - 도쿄대 교수 강상중 '어머니' 출간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글을 아는 내게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위탁하신 유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어요."


강상중(姜尙中)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든 건 올 봄 동일본을 휩쓴 대지진 현장이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대지진과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공포에 떠는 동부 연안의 도시로 들어가 폐허 위에 서서 참상을 리포트할 때였다고 했다.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되었고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은 그는 현재 도쿄대 정보학연구소 교수로 재직중인 강상중이다. 그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냉정한 분석과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유명 인사다. 그런 그가 대지진 참상을 전하는 텔레비전 현장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한 것이다.


"꼭 6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폐허 위에 나타나 이리저리 소금을 흩뿌리면서 진혼의 춤을 추시더군요. 한 손에 소금 항아리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소금을 한 움큼씩 집어서 힘껏 뿌리던 그 모습에서 과학이나 기술 또는 지식과 신앙이 모두 잔꾀에 지나지 않는 공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버이날 부르는 아들의 '사모곡' - 도쿄대 교수 강상중 '어머니' 출간 원본보기 아이콘

그랬다. 강상중은 역도산과 정대세, 추성훈, 이충성이 그랬듯이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2세다. 그의 어머니 시대 사람들이 그랬듯이, 강상중의 어머니 우순남은 한국의 남쪽 바닷가 진해에서 태어나 16살 때 일본으로 건너와 살았던 '식민지의 여자'였다. 그때부터 반세기 이상을 규수의 구마모토 땅에서 보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강상중이 자신을 있게 한 어머니를 그리며 사모곡을 펴냈다. 사계절출판사가 펴낸 '어머니'가 그것이다. 1950년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조선인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나가노 데스오 永野鐵男'라는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다. 와세다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한 뒤 일본 이름을 버리고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한국인의 차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 그는 일본에서 가장 명망 있는 비판적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어버이날 부르는 아들의 '사모곡' - 도쿄대 교수 강상중 '어머니' 출간 원본보기 아이콘
"어머니라는 단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자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아요. 특히 세상의 아들들에게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어머니'일 뿐이죠. "
'어머니'라는 단어가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그는 '어머니'를 부모 세대인 재일 한국인 1세를 부감하는 시선으로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2008년 봄부터 슈에이샤(集英社)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글을 연재해 왔다. 이것을 단행본으로 편집해 새롭게 출간한 책이 '어머니'다.

AD

강상중이 이 책에서 그려낸 것은 자신의 어머니만이 아니다. 전후 혼란기의 역경을 이겨내며 자식들을 키워낸 재일한국인 1세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의 삶을 통해 기록한 것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 강대우(姜大禹) 역시 가장의 역할을 짊어지고 평생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조건은 당시 재일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처지였다고 강상중은 말한다. 철저히 음력을 고수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무속에 의존한, 차별과 생활고 속에서도 여성으로 꿋꿋이 살아온 어머니의 인생은 '재일'의 역사 자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적 강상중이 살던 구마모토 일대에도 과거 1천명이 넘게 살았던 재일 한국인의 역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는 이들이 살았던 증거가 역사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이들의 삶과 역사를 후대에게 전하려고 한다.


"어머니가 많은 것을 얻고 잃은 것처럼 자신도 많은 것을 얻고 잃었다"는 강상중은 "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끝없는 위안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기억이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