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제대로 만들 열쇠 '한국과학영재학교' 가보니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마태복음 효과'라고 부른 이 현상은 사회가 주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얘기다. 최고의 학생들은 최고의 강의를 듣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런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 기회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져 결국 그들은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서 성공을 거둔 사람'을 일컫는 아웃라이어(outlier)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7일 찾은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 전국의 과학영재들이 모인 이곳은 특별한 기회를 얻은 미래의 아웃라이어 집합소였다. 또 이곳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카이스트 사태의 장기적인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숨어 있었다.
지난7일 부산의 과학영재학교에서 열린 '과학축전' 물리 콘테스트에서 3학년 지동진 학생(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친구들과 함께 '파스타면과 마시멜로를 이용해 가장 높은 탑 쌓기'에 도전하고 있다.
매년 한국과학영재학교(교장 권장혁)에서는 수업 대신 학부별 콘테스트와 퀴즈대회, 천체관측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과학축전(Science Academic Festival)'이 열린다. 마침 이날은 과학축전 첫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물리 콘테스트에서 만난 지동진 학생(3학년)은 과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스타 면을 손에 쥐고 있었다.
올해 주어진 과제는 '파스타 면과 마시멜로를 이용해 탑을 쌓아라'. 탑을 평가하는 기준은 3가지다. '얼마나 높은 탑을 세울 수 있나? 얼마나 기울어진 탑을 세울 수 있나? 마지막으로 얼마나 안정적이고 강한 탑을 만들 수 있는가?'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팀이 1등을 차지하게 된다.
2인 1조로 구성된 31개 팀에게는 각각 파스타 면 3봉지와 마시멜로 1봉지, 그리고 글루건 스틱 2개만 주어졌다. 동진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탑을 쌓기 전 연습장에 탑의 구조를 그려보고, 높이와 너비, 면적 등을 꼼꼼히 계산하느라 분주했다. 팀끼리 아이디어 회의를 마친 다음, 파스타 면을 자르고 마시멜로를 뭉치는 등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화합물의 구조나 피라미드, 송전탑과 같은 익숙한 구조물을 응용한 탑들이 완성되었다.
심사를 맡은 김경대 교사는 "60여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탑을 쌓고 있지만 똑같은 모양의 탑은 하나도 없다"며 "수업시간에 배운 '힘'과 '평형상태'이론을 실제로 탑을 쌓는 데 적용하며 학생들이 자유롭고 열린 탐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3들과 같은 나이지만 현재 3학년 중 수능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아예 없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대부분이 영재학교 특별전형 또는 특기자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졸업생 142명 중 대학 진학생은 카이스트 104명, 서울대 25명, 포스텍 5명, 해외유학 10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편 실패를 감싸 안는 영재학교의 분위기는 최근 불거진 카이스트 사태의 한 해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동진이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냥 좋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대답했다. '마음껏 실험할 수 있고, 실패해도 용인해주는 학교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동진이는 "실험을 하다보면 성공보다 실패할 때가 많지만 실패를 통해 얻는 게 더 많다"며 "성공하면 가설을 바탕으로 한 결과를 확인하는 것밖에 못하지만 실패하면 '왜 실패했나' 분석하면서 실험과 관련된 모든 변수들을 분석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경험은 그가 지난해 국제청소년 물리토너먼트(The International Young Physicists' TournamentㆍIYPT)에 출전했을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동진이는 "세계 무대에서도 실패를 많이 해본 학생들이 토론을 더 잘하더라"며 "실패해본 학생들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2학년이 된 조완진 학생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학교환경을 영재학교의 강점으로 꼽았다. 완진이는 "매번 실험이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때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한다는 이유로 실험조차 못하도록 막는 경우는 결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면 된다"며 "연구실, 실험실 심지어 천문대까지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공부하는 게 재밌다"고 덧붙였다.
완진이를 비롯한 영재학교 학생들은 고등학생이기보다는 대학생과 같은 학교생활을 한다. 무학년ㆍ졸업학점제로 3년 동안 135학점을 이수해야 하고, 학년별로 R&E(Research & Education)나 졸업연구를 한다. 이들 역시 학점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을 순 없다. 하지만 하고 싶은 연구나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돼 있어
학점에만 목숨 걸지 않는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인 학생들이 학교생활이나 학업에 어려움을 느낄 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있다. 담임선생님과 비슷한 역할을 맡는 AA(Academy Adviser)가 1인당 10~12명의 학생들을 관리한다. 1인당 관리하는 학생 수가 적다보니 한명씩 꼼꼼하게 챙겨주는 게 가능하다. 담당학생이 생활규율을 어겨 벌점을 받거나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AA가 호출해 상담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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