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곰인형을 들고 “TV에 나온 상고재”를 찾는 데이트족과 연신 “스고이”를 외치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북촌 그 어디매쯤, 여든을 훌쩍 넘긴 장오(장민호)가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봄이지만 장오는 지금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정든 집과도, 유일한 혈육인 손자와도, 자신의 남은 생과도. 손자의 빚 청산을 위해 장오는 집을 팔았고, 덕분에 한옥은 조각조각 해체됐다. 이제 그곳엔 카페가 들어설 예정이다. 변화의 시기, 더 이상 효용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옛것들은 박물관에 가둬지거나 버려진다. 쌀집도 이발소도 주거공간으로서의 한옥도 그리고 인생도.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한옥과 장오에게는 앙상한 뼈대와 가방 하나로 정리되어져버린 몇 년만이 남았고, 벼랑 끝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하지만 장오는 그 집에 새하얀 문풍지를 다시 바른다.<#10_LINE#>
지금,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라
연극 <3월의 눈>은 장오와 이순(백성희)을 통해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모습과 그 안에 깃든 삶의 깊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다루는 작품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이 반세기 이상 연극계를 굳건히 지켜온 원로 연극배우 백성희, 장민호에게 바치는 헌사로, 두 배우는 깊은 눈빛과 시선으로 화답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낸다. 누가 장오이고 누가 장민호인지 알 수 없는 완벽한 물아일체의 경지는 관객들을 진짜 인생으로 초대한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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