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지진보다 고유가가 세계 경제 볼모로 잡는다"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지진일까? 유가일까?
요즘 전 세계가 처한 형국은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재앙은 혼자 오지 않고 몰려온다는 한자성어처럼 각종 악재가 세계 경제를 폭격하고 있다.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정정불안에 따라 날마다 치솟는 국제유가, 유럽연합(EU)의 부채위기, 아시아 등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에다 일본의 대지진까지 겹쳤다.
선진국들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내고 있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까지 낮추고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사들인 탓에 ‘새로운 충격’(another shock)에 대응할 실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결같이 회복단계에 겨우 들어선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데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자에서 ‘급격한 유가상승’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일본의 대지진에 따른 반도체 칩과 자동차 부품 등의 공급차질이 세계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보다는 고유가가 선진국과 후진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더 무게를 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FT는 “소비자들이 유가 상승으로 신뢰를 잃을지, 임금인상을 요구해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하도록 할 지가 가장 중요하며 그것에 대한 해답에 세계 경제가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유가가 오르면 석유생산국들은 같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수입이 늘게 된다. 그러나 늘어나는 석유 수입을 모두 국내에 쓸 경우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유국들은 해외에 투자하는 데 대개 미국 국채를 사들인다. 이를 통해 미국은 필요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민간 소비나 투자를 오히려 갉아먹는다.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킹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가 급등은 이런 식으로 글로벌 수요를 낮춘다”고 주장했다.
급격한 유가 상승은 세계 제 1 경제대국인 미국 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골드만 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배럴당 10달러가 오를 경우 미국 성장률은 향후 2년 동안 매년 성장률이 0.2%씩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델은 유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FT는 꼬집었다. 소비자들이 신뢰를 잃고 세계 경제가 위험하며 불확실하다고 느끼면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릴 것이며 이는 성장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더욱이 미국 연방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려고 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상승은 미국 성장률에 새로운 위험을 제공한다. 2011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4% 수준을 향하고 있었지만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3월 미시간대학 소비자신뢰지수가 2월 77.5에서 68.2로 하락한 것은 "미국 경제가 여전히 꽤 강한 역풍과 싸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컨설팅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폴 애쉬워쓰는 지적했다.
개발도상국들은 특히 고유가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아직 소득수준은 낮은데 유가가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석유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의 경우 이집트가 9.5%인 것을 비롯, 태국 9.2%, 인도 6.4%였으나 미국은 3.3%, 일본은 2.2%였다.
이는 개도국들은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에서 유가 상승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신흥국들은 올들어 너무 빨리 성장해 이미 과열 수준에 근접했고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신흥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나라가 유가 상승의 타격을 받으면 이는 곧 선진국들의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흥국들은 재정상태가 나은 편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해 유가 상승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유가상승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쓴다는 유럽 국가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는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재정긴축 정책을 펴고 있어 유가 상승시 대응할 여력이 별로 없다. 게다가 유럽은 미국보다 인플레이션이 높다. 최근 유럽 국가들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4%, 특히 영국은 4%나 됐다.
때문에 유로존(유로 사용 17개국)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 같으며, 특히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는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FT는 덧붙였다.
FT의 이같은 분석은 “이번 일본 대지진이 일본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WSJ 12일자)”이라는 일련의 전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일본 지진 피해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데다 공급망을 통해 각국 산업에 미칠 영향도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만큼 다소 때이른 감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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