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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깃든 중국인의 정서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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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우리 사회에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 자꾸만 줄어가는 게 아닌지 고민해 봐야할 때 입니다."

서경호 서울대학교 교수(사진ㆍ중어중문학과)는 8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휴넷 주최, 아시아경제 후원의 명사 CEO(최고 경영자) 조찬 강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서 교수는 갈수록 짧고 얕은 대화방식을 선호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스타카토식 대화'로 표현하고, 중국의 삼국지연의 탄생과정을 비교해 그 문제점을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긴 이야기를 소화해낼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카토는 음악 용어로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을 말한다.
서 교수는 "나는 삼국지 전문가는 아니지만 삼국지를 통해 우리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먼저 삼국지연의가 탄생한 사회문화적 배경부터 설명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원나라 이후 명대에는 '적층문학'이 유행했다. 적층문학이란 여러 이야기들이 층층이 쌓여져 이뤄진 긴 서사 문학이란 뜻이다. 몽고족 지배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가장 긴 이야기라고 해봐야 30~40쪽 정도가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몽고족 지배 이후 소설책 하나가 30~40권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이 명나라의 하급관료에 불과했던 나관중으로 하여금 삼국지연의를 쓸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약 100년 가량의 몽고 지배에서 벗어나 새 왕조를 세운 명태조의 첫 칙령이 바로 '몽고족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승자나 결과 중심의 '사실' 자체보다는 역사의 '의미'를 중시한 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것이 서 교수의 주장이다.
서 교수는 "역사적 귀결이란 우연히 어쩔 수 없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맥락과 이유에 의해서 필연적인 이야기로 다다르게 된다"면서 "유비가 조조를 치기위해 북벌을 감행했다가 실패한 이유는 관운장을 잃은 유비의 오기와 무리수를 두다가 몸이 허약해진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패자가 패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의미까지 중요하게 여긴 점이 삼국지연의에 나타나 있다"고 분석했다.

의미를 중시한 태도의 예로 '사기'를 쓴 사마천도 좋은 예라고 서 교수는 꼽았다. 일반적으로 왕에 대한 기록은 '본기'에 속하고 패자에 대한 내용은 '열전'에 속한다. 하지만 사마천은 한고조 유방에게 패한 '항우'의 역사를 본기에 넣었다. 비록 패자지만 한 왕조를 건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서 교수는 "역사와 긴 이야기를 좋아하는 정서는 북경의 택시기사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면서 "역사 이야기를 만담처럼 이야기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이들은 즐겨 듣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에 반해 우리사회는 한 장면만 보면 전체 내용을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점이 무엇이냐'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곳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우리 생활에서 수다성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 내용을 연결하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자"고 제안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이자 발전실행위원회 교육분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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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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