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골편지]出獄...그리고 겨울 무지개가 시렸다
[아시아경제 이규성 건설부동산부장]눈이 몇차례 내렸다.집은 雪獄이 됐다.봄이 오기 전까지 잣나무골은 눈덮인 채로 겨울을 나게 될 것이다. 눈들의 독재가 시작되면서 나는 주말에 거의 외출을 삼갔다. 다 커버린 아이들도 이제는 산 비탈에 나가 썰매를 타지 않는다. 이웃들의 왕래도 끊겼다. 새들도, 고양이 한 마리조차 깃들지 않는다. 잣나무골은 침묵의 땅이 됐다.
마을에서 잣나무골에 이르는 비좁은 진입로만이 뚫려 있다. 그것은 어떤 상징과도 같다. 진입로는 내가 세상으로 밥을 구하러 다니는 유일한 통로다. 오직 그것만이 허용된 듯...검은 빛으로 물든 작은 샛길이 오로지 닫히지 않았다. 잃어버린 세계 '아틀란티스'로 향하는 라마승들의 동굴처럼 말이다.
길이 하나 열려 있다는 것이 오히려 외로움도 고립감도 절실하게 했다. 또한 감옥을 더욱 깊게 했다.
◇ 雪獄, 불통된 세계
나는 오전 열시가 넘도록 침대에 붙어 있었다. 이미 잠 깨 메시지 알림소리를 몇차례 듣기는 했다. 열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있을 즈음 잣나무골밖의 세상에서 전화 한통이 왔다.미국에 사는 큰 형이다.
"꼭 !! 내 말 잘 들어라. 전쟁 나면 부모님 모시고 덕석골(고향마을)로 가라. 여동생들도 데리고 가라. 니 식구들도... 제발 당부하마. 그리고 아들은 미국으로 보내라."
이미 여러차례 당부한 말이다.
"무슨 얼척 없는 소리. 전쟁이라니..피난 또 뭐고 ? 걱정마라."
나 또한 같은 대답을 반복한 지 오래다.
내고향 덕석골은 잣나무골과 많이 닮았다. 고향집과 내 집도 닮았다.뒷산을 배경으로 파묻혀 있는 듯한 형세가 특히 그렇다. 또한 전면의 레벨은 확장적이다. 잣나무골의 외길 통로가 닫히지 않은 것처럼...
피난한다해도 잣나무골이나 덕석골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듯 하다. 얼마전 연평사태 당시 주변 사람들마저 "전쟁 나면 우리보다 더 안전하겠다"고 한마디씩 떠들기는 했었다. '정말 세상에 피난처가 있기는 한 걸까 ? 사는게 전쟁터고, 나날이 피 흘리는데...' 큰형과 통화하면서 아주 진부한 생각에 빠졌다.
큰형의 얘기도 진부하기 그지없다. 더우기 구닥다리같은 소리여서 별로 대꾸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한참동안 설명을 늘어놓으며 안심시키려도 해도 소용없다. 전화선 너머 그의 목소리는 완강하다.그와의 간극이 실감났다. 더 이상 설득을 포기하고 '그러마'하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고립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전화를 끊자 답답함이 밀려 들었다. 큰형의 전화는 사실 설옥의 잣나무골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준 것에 불과하다. 나의 감옥과 큰형의 감옥, 서로 불통된 세계...우리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는 예감이 밀려들었다. 만약 형도 나도 그곳에 이르른다면 서로의 감옥을 해체할 수는 있을런지...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옥
어느 날 저녁 퇴근해서 데크에 참치 캔 하나를 올려뒀다. 주변의 고양이든 무엇이든간에 한끼 때거리라도 되라고... 이미 며칠전 눈밭에 뿌려준 고구마는 사라졌다. 과일껍질들도 없다. 눈밭 위에 얼어부튼 새노란 귤껍질 몇개만 남아 있다.
"추위에 용케들 살아 있구나...봄이 올 때까지 잘 견뎌라..."
고구마들이 사라진 것을 보니 위안이 됐다. '내일 새벽이면 참치 캔도 비어 있으리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먹이를 찾아 헤멜 고양이들을 생각했다.
언젠가 딸애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참치 캔 하나씩 사왔다. 그애는 항상 집안에 들어가기전 데크에 참치 캔을 놓아뒀다. 학원엘 다니지 않으니 귀가시간은 항상 다섯시 무렵이다. 다섯시경이라면 그애의 친구들이 학원에 있을 때다. 하지만 그애는 혼자다. 학원에 간 적이 없으니 친구 사귈 일도 그만큼 적다.
그런 애가 한동안 참치캔을 사들고 들어온 것이다.처음엔 고양이 한 두마리가 와서 참치를 먹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들까지 몰려왔다. 간혹 그애는 구운 삼겹살이나 생선 토막도 던져주곤 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였다. 문소리만 들리면 주변의 고양이들은 득달같이 달려왔다.간혹 그애는 먹이를 던져주고 고양이 가족들의 만찬을 지켜보곤 했다.그애 주변에는 항상 고양이들이 맴돌았다. 그들은 이미 길들여졌다.내가 출근하느라 현관문을 열 때도 고양이떼가 삽시간 몰려들어 달아날 줄 모른다.
아내는 고양이들에 질색했다.어떤 때는 발 아래 채일 정도로 달려들어 아내는 고양이를 쫓느라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니 그애한테 참치나 고기를 주지 말라고 수시로 야단쳤다. 엄마의 잔소리에도 그애는 멈추지 않았다. 날마다 용돈도 바닥났다.3000원짜리 참치캔을 사느라 친구들에게 돈을 빌린 적도 여러차례다.
엄마 몰래 내게 돈 좀 달라고 애원하는 일이 많아졌다.난 항상 용돈을 줬다. 용돈을 주는 동안 우린 공범자였고, 가끔 나도 고양이 가족의 저녁 식사자리엘 그애와 동참했다.그런 때면 우리를 대하는 고양이의 표정이 너무 우호적여서 집에서 사육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아내는 참다 못해 고양이와 그애를 교묘히 갈라놓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어느날 아이에게 강아지 한마리를 선물한 것이다.
그애는 엄마가 강아지 한마리를 받고 나자 곧 고양이들을 잊었다. 나도 잊었다. 잣나무골에 다시 눈들의 독재가 펼쳐졌다.감옥이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강렬하다. 이제 소통은 사라졌다. 그애와 고양이 사이에 높은 담장이 쳐졌다. 아내와 그애 사이의 공조도 거대하게 빛났다. 나는 침묵했다. 길들여진 고양이에게 참치를 끊는다는 것이 어떤 짓인지를...
◇ 出獄하다...
'봄이 오지 않으면 봄을 찾으러가면 되지.. 어디쯤 봄이 오고 있을거다.'
그렇게 집을 나선 시간은 오전 열시경. 바람이 거셌다.출옥을 감행한 것이다. 나는 바람을 등지고 걷기로 했다.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올 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작정 가고 싶은만큼 할일 없는 여행자처럼 걸을 작정이었다. 잣나무골을 내려왔을 때 발길은 이미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잣나무골에서 동쪽으로는 축산단지를 거쳐야한다.
망설여졌다. 이미 마을은 구제역으로 차단돼 있다. '바람을 지고 걷자면 축산단지 한복판을 건너야하는데...' 내가 구제역 매개체일 수도 있다. 일단 김약시묘역 앞의 방역게이트에서 머뭇거렸다. 오가는 차도 없다. 초소안의 농부들이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내다봤다. 마을 안쪽에서 차가 한대 내려와 게이트를 통과할 때 반대편 게이트를 통과했다.
소독약을 뒤집어쓰자 수만개의 무지개가 온 몸에서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무지개가 시렸다. 내가 무지개의 감촉이 시립다는 것을 안 것은 이게 처음이다. 초소의 사람들을 돌아봤다.축산단지를 건너도 된다는 표정이다. 나도 무언의 인사를 보냈다. 한시간쯤 걷자 여주와 광주의 경계선에 이르렀다. 이미 해는 원적산 머리 위로 올라가 있다. 동쪽으로 더 나아갔다. 원적산 서북편 도로는 내가 간혹 주말에 마라톤을 하던 코스다. 동학 2대교주인 최시형 묘소가 있는 주록리까지는 10여 km. 왕복 20여km를 세시간반만에 주파하곤 했다.
이 길은 옛날 장길산이라는 산적이 한양가는 길목인 곤지암에서 공물을 털어 바로 이 군도(郡道)를 지나 이포나루를 건넜다는 전설이 있다. 아마도 하루쯤은 원적산에서 노숙하기도 했을게 분명하다.
송현리 동부화재연수원 앞 동막골상회를 지날 즈음 온몸에 땀이 솟아올랐다. 좀더 걸었다. 출옥한지 두어시경이 지나 갈림길에 도달했다. 하나는 최시형 묘소로 오르는 원적산 오솔길이며 반대편은 금사저수지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다리쉼도 하고 물도 마실겸 '주록상회'로 들어갔다.물한통을 사고나서 의자에 잠시 앉았다. 상회의 진열장에는 낚시도구가 다 바래고 낡아보였다. 먼지도 가득했다.
주인에게 물었다.
"요즘은 낚시도구가 안 팔리나요. ?"
"재작년에 수리조합사람들이 베스를 푼 이후로 빙어씨가 말랐죠. 이젠 빙어 낚시꾼이 전혀 없어요."
"아니 왜요 ? 다른데는 베스 퇴치에 혈안인데요."
"누가 아니랍니까 ? 사람들이 몰려 사고라도 나면 수리조합한테 책임지라고 군청에서 말했답니다. 그래서 수리조합에서 베스를 넣어 빙어를 없앤거요."
"아니 그럼 !! 겨울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나요 ?"
"아뇨 !! 내가 여기 토박이인데 겨울에 빠져죽는 사람은 못 봤어요."
" 그건 그렇다고하고요. 겨울에 사람들이 몰리면 오염은 많이 되나요 ?"
"무슨 소리요 ? 여기는 빙어가 가득한 1급수요. 오염됐다면 베스는 뭐하러 넣었겠어요. 빙어가 먼저 사라졌지...!!"
감옥은 잣나무골밖에도 널려 있었다.너무 허탈해서 산중까지 스며든 군청 공무원들의 관료주의를 탓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주록상회 주인에 따르면 금사저수지는 베스 하나로 2년만에 완전히 생태계가 무너졌다. 그런 편에서 금사저수지는 괌과 다르지 않다.괌에서 새들이 사라진 기록은 참혹하다. 낙원처럼 보이는 괌은 새들의 地獄이다.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괌이 갈매기 한 마리 살지 않는데는 '갈색나무뱀'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 이삿짐속에 몰래 숨어들어온 나무뱀은 삼십년만에 괌을 초토화시켰다.다른 뱀들과 달리 나무를 잘 타는 나무뱀은 무단침입도 모자라 동박새를 전멸시켰으며 나아가 공작비둘기, 나이팅게일, 미크로네시아물총새, 괌흰눈썹 뜸부기를 전멸시켰다. 끝내 갈매기, 비둘기까지 새란 새는 모두 먹어치운 것도 모자라 농가의 닭과 오리 등 가금류마저 탐식했다.이제 괌은 새가 없는 섬이다. 금사저수지도 같은 처지다.
나는 최시형 묘소쪽으로 가려던 발길을 저수지쪽으로 돌렸다. 저수지는 바닥공사를 하느라 물은 다 빠져 있고 산자락은 포크레인에 짓이겨져 있다.사람들이 사라진 저수지 너머로 눈덮힌 이포골프장이 보였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주록리에서 이포골프장에 이르는 금사저수지변으로 작은 비포장 오솔길이 나 있었다. 숲과 그 숲의 풍경을 비추는 저수지는 아주 운치 있는데다 여름철 계곡에서 아이들과 멱을 감거나 루어낚시를 하기에 일품였다.
나는 두시경쯤 장흥리 초입에 다다라 점심을 먹었다. 늦은 점심이다. 막상 국밥 한그릇을 하고 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아내한테 문자를 날렸다.
"데리러 좀 와라"
"바보야.그럴거면 돌아올 만큼 가야지."
아내는 단호했다. 다시 걸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이미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이미 남은 여정은 감옥으로의 귀환이 돼 버렸다.
"이제 내게 있는 날들이 또 어떤 감옥을 만들어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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