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카타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내 이력에서 카타르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얼마전 한때 모신 회사 사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걸 유심히 보았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밀려왔다. 그 분을 카타르에 모시고 갔다 서명식도 치르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일이 있어서다.
그 일은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서명식을 위해 나름 준비는 했지만 우리와 카타르 사람들간 사안을 대하는 인식차는 컸다.
서명식은 널리 통용되는 말은 아니지만 HOA(Heads of Agreement)에 관한 것이었다. MOU와 계약서 사이 단계에 있는, 중간 정도의 구체적 그림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 부회장은 합작법인(Joint Venture) 설립을 위해 직접 카타르에 방문, MOU를 체결하고 돌아온 후 HOA 체결에 장시간 골몰했다. 신규사업 업무를 총괄하는 팀에 소속된 나는 기본설계(Front End Engineering)나 EPC 건설업체들을 선정하는데 참여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가슴벅찬 일이다.
카타르로 출발하기 전부터 그 HOA를 통과시켜 서명식을 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 밤낮으로 3일간 협상안을 거의 새로 작성하며 벽에 부딪혔다.
중동사람들은 협상에서 굉장히 뛰어나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은 프로젝트에 대해 70%를 투자하는 주체였기에 협상력 우위에 있었던 것도 있다.
하얀 천으로 머리부터 온몸을 둘러싼 옷을 입은 그들, 전통적 복장을 강조하는 듯 했지만 실은 대단히 서구적이면서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일본의 경우 협상에서 매우 예의바른 태도를 보인다. 부딪히는 사안이 생기면 리더끼리 조용히 방을 떠나 대 타협을 맺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전에 논의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
중동사람들은 환상적 식사대접은 있었지만 거래에서는 한국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핵심사항에 대한 것도 하룻만에 뒤집기를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도 않는 듯 했다. 이에비해 영어구사력은 뛰어나고, 결정권이 있는 리더는 놀랄 정도로 머리가 좋고 논리도 뛰어났다. 중동에서의 협상이 예측불가능이라는 교훈을 얻게된 계기였다.
당시 쟁점 중 하나는 투자자금에 관한 것이었다. EPC 사업에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데 카타르 쪽에서는 일부를 우리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우리측은 최종 계약서 사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사회에서 자금지출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기업은 상법이나 정관상 대규모 투자를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런 논란 끝에 협상이 이뤄지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이때 중간 에이전트가 건넨 말이 "이런 것이 바로 영화 '제리 멕과이어'에 나오는 'show me the money' 전략"이라고 말했다. 최종 계약서가 체결되기 전까지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데 그때까지 우리측이 돈 한푼 안 보태고 말만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카타르 측에서 추진한 프로젝트이기에 EPC 선정과 관련된 일을 계획대로 추진해 갈 것이란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다.
내 의문은 에이전트가 왜 이 말을 그제서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우리와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느끼지 않았고 그들도 진지한 자세였는데 협상이 결렬된 후에야 말이다. 대면 방식의 'Face to Face'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수면에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이 부지기수다. 하물며 이메일 협상을 통한다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일등석을 타고 날아온 3명의 사장이 서명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간 것이 못내 서운했다. 이후에 금융기관을 이용해 파이낸싱을 도와주고 이자는 우리측이 부담하기로 해 합의점을 찾긴 했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몰입태도의 차이는 물론 협상과정에서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문화적 차이는 처절이 느끼게 됐다.
힐러리 앤드 톰슨 파트너스 대표(hjthomp@hotmail.com)
*김희정 씨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년간 인턴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L그룹에 이어 외국계 기업의 법률 전문가로 활동해오다, 지난해 하반기 '힐러리 앤트 톰슨 파트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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