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느닷없는 발표로 시작된 낙지 머리(내장) 파동이 벌써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국정감사장에 산 낙지까지 등장시키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번 파동에서도 실제로 우리가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어민과 유통상이 상당한 금전적 피해를 입고, 애호가들이 혼란을 겪었지만 식품 안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우선 법과 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식품의 생산이나 유통 사실을 발견한 지자체는 즉시 그 사실을 식약청에 통보해야 하고, 시정명령이나 허가취소 등의 필요한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서울시는 우리 법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린 셈이다.
서울시가 식약청에 통보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두 기관 사이의 원만한 '협의'나 '조율'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해식품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지자체의 범위를 넘어 전국 규모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체에 해로운 식품의 유통이 단순히 서울시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는 의미다.
머리까지 포함된 '연포탕'의 존재를 무시하고 낙지 몸체의 위해성만을 검사하는 식약청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것이 서울시의 의도였어도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더욱이 원산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수준의 전문성으로는 무모한 시도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과학을 앞세워 법적 규제의 기준인 '허용 기준'을 인체 안전성과 직접 연결시켜버린 것도 문제였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어겼다고 반드시 사고가 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마찬가지로 허용 기준을 넘은 식품을 먹는다고 반드시 심각한 질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위해 식품에 대한 민감성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이 섭취하는 새우, 땅콩, 복숭아 때문에 생명이 위험해지는 사람도 있다.
허용 기준은 안전성보다 법적 규제에 따른 경제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라마다 허용 기준이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선진국에 산다고 위해 식품에 더 민감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선진국의 허용 기준이 더 낮은 이유는 선진국의 소비자가 더 안전하고 깨끗한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여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의미와 식품 선택의 기준도 혼란스러워졌다. 낙지 머리가 해롭다는 사실은 타협이 불가능한 '과학'이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는 서울시장의 발언 때문이다. 서울시가 낙지 머리의 인체 위해성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은 절대 아니다. 첨단 기기를 이용해 카드뮴을 검출한 사실이 과학이라는 주장은 어설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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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식품 선택 기준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서울시장의 주장처럼 안전성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맹독성의 테토로도톡신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안전성이 식품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식품의 안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식품은 단순히 굶주림을 해결해주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다. 이제는 정부가 식품의 안전성을 지켜줄 전문성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안전성에 대한 난해한 자료와 일방적 주장만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수는 없다. 소비자도 식품안전에 대한 표피적이고 감상적인 기대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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