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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포럼] 몹쓸 이웃을 견디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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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슬프게도 북한의 포탄이 연평도 민가를 덮친 날 저녁, 오랜만에 귀국한 옛날 직장 후배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후배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습니다. 후배가 근무하는 펀드는 한반도의 평화에 걸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통일에 다가선다고 보고, 그 때 수혜를 받게 될 회사들에 투자를 해놓았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회사들이 궁금했습니다. 후배는 우선 침대회사를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겨서 대규모 집단수용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침대수요가 폭증할 것이고, 북한이 잘 관리돼 주거상황이 개선된다고 해도 역시 침대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비료회사 또한 북한의 낮은 농업생산성 개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화학비료원료 매장량이 비료의 생산원가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도 알려줬습니다. 후배는 이제 방위산업 관련 주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우울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통일이, 아니 북한의 변화가 제 삶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사실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말이지요.
제게는 전쟁도 통일도 모두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군대를 거쳐 예비군과 민방위를 지나면서 전쟁에 대한 훈련을 꾸준히 해온 셈이지만, 막상 지금, 바로 오늘 전쟁이 일어난다고 할 때 제가 해야 할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돼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통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그리고 통일이 가져다 줄 장기적인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물론 동의하지만 통일이 된 직후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 개인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깜깜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가 안 돼있는 그 일들은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크기의 엄청난 변화를 우리 모두의 삶에 가져다 줄 것이고,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근차근 준비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다면? 등에 식은땀이 날 지경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북한의 포격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이리저리 따져보았습니다. 음모설에 자주 유혹되는 저는 어쩌면 북한의 지도자들이 대규모 매도포지션을 잡았던 것은 아닐까, 그런 섣부른 의심도 해보았습니다. 시장에서 예외적으로 매도포지션이 늘어나는 것이 테러의 전조 가운데 하나라는 설을 떠올리면서 말이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북한은 우리의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을, 그 비용을 분명히 계산했고, 노렸을 겁니다. 민간인의 인명까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가벼이 희생시킬 수 있는, 지극히 몹쓸 이웃을 둔 탓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정말 크고도 분합니다. 희생된 젊은 목숨들까지 생각하니 밤 깊은 시간까지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뒤척이며, 아주 오랜만에 소총 분해조립과정을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정말 그날이 온다면, 그래서 총을 잡아야만 한다면 씩씩하게 준비돼있고 싶습니다.

나치즘과 시오니즘을 함께 비판했고, 그 과정에서 나치의 위협을 받았던 미국의 양심적인 저널리스트 도로시 톰슨은 여러 전쟁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요. 두려움 때문에 평화에 매달린다면 겁쟁이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성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을 찾는 과정은 무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용기를 필요로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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