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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이 서울학생에게 보내는 체벌금지 당부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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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교육문화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몇 년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의 제목입니다. 체벌 없는 학교가 선포됐지만 매를 내려놓은 학교는 익숙치 않은 환경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매를 내려놓자 방종하는 일부 학생들로 인해 선생님이 상처 받는 사례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호소하는 편지를 <아시아경제신문>에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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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서울 학생 여러분!
고운 낙엽이 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그 자리에 더욱 빛나는 초록이 돋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쭉쭉 곧게 뻗어 싱싱하게 자란 나무를 보면 나무만을 생각합니다. 땅 속을 흐르며 그 나무를 키워온 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메말라서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나무를 봐야지만 비로소 '이 땅에 물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선생님은 땅 속을 흐르면서 나무를 키우는 물과 같은 분이십니다. 학생 여러분을 위해 보이지 않게 온 몸을 바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게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우리 선생님들께서 요즘 마음을 앓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자율과 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심한 아픔을 견디고 계십니다.

저는 학생 여러분의 인권을 위해 체벌을 금지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여러분을 믿고 매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저와 우리 선생님들은 체벌이 사라지면 학생과 선생님이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질서가 유지되는 그런 아름답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11월이 되면서 체벌금지로 인해 일부 학교에서 혼란스럽다는 소식이 자꾸 들려옵니다. 잘못을 나무라는 선생님에게 대들고, 화를 돋우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에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하십니다. 부모님은 물론 다른 많은 어른들도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례한 일부 학생의 모습에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매가 필요하다' 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체벌금지는 너무 이르다'고 말합니다. '부모 말도 안 듣는 내 아이를 선생님이 때려서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십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에게 정말 매가 필요한 건가요? 매가 있어야만 학교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아닐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능력과 인격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체벌 대신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학교 내에서 질서를 책임질 수 있는 숨은 힘이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여러분은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 존중 받을 수 있습니다. 체벌이 있든 없든 규칙은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체벌이 사라졌다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선생님에게 학생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러분에게 돌아갑니다. 스스로 자기결정을 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례한 학생들에게 제대로, 분명히 말해줘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정한 규칙은 우리가 존중하며 지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현명하고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하급생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들으면 마음이 어떨까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지 않을까요? 그러니 무례한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배움을 심어주는 분이십니다. 그런 선생님이 여러분들과 씨름하듯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속상함, 화남과 싸우고 슬픔과 싸우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제가 서울의 모든 선생님과 힘을 모아 향하고 있는 것은 '꿈의 학교, 행복한 서울교육'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이 상처 입는 학교에서는 학생들 역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체벌이 사라진 학교에서만이 학생들의 자율과 책임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믿음과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행복한 학교의 열쇠를 바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율과 책임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선생님들을 존중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뢰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학생을 믿고 매를 내려놓으신 선생님께 여러분도 감사의 보답을 드려야 합니다. 그 보답은 여러분의 참된 자율과 책임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선생님께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의 믿음만큼 커가겠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친구들과 함께 생각해 보십시오.

< 2010. 11. 23 서울특별시교육감 곽노현 >



교육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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