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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아닌 '캡틴' 구자철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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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객원 기자]눈 앞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야속하게도 심판은 곧바로 종료 휘슬을 불었고, 그렇게 '어린 왕자', 아니 대표팀의 '캡틴' 구자철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꿈은 멈추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은 23일 오후 중국 텐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UAE를 상대로 연장 후반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모두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병역 혜택에 주목한다. 병역 혜택을 받게 될 경우 프로 선수로서의 금전적 이익은 물론이고 해외 무대 진출 등 여러가지 면에서 향후 선수 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대한 그 어떤 각오를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군대가기 싫어서'란 말로 환원시켜 버리곤 한다.

그러나 '캡틴' 구자철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색안경 낀 시선을 거부할 수 있다. 구자철은 이미 국가유공자 자녀 혜택으로 6개월 공익근무판정을 받은 몸. 현역 대상자인 다른 선수들에 비해 병역 혜택이 주는 의미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구자철은 아시안게임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졌었다. 대회 직전 대표팀 소집 당시에도 그는 "간절히 원했던 팀에 합류하게 돼 너무나 기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지난 3개월간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왔다. 오직 이 팀만을, 이 대회만을 기다리고 생각해왔다"라고 말했다.

왜 이 선수는 이렇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원하는 걸까. 그저 개인적인 야망이 강한 걸까. 하지만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에도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며 의연해하던 구자철이지 않았던가.

궁금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쯤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

"20세 이하 대표팀 시절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 나에게 엄청난 믿음을 주셨다. 표현을 못하는 성격이라 말은 못했지만 많이 감사드리고 있고, 그 분들과 함께하는 이번 대회에서도 반드시 금메달을 딸 것"이라며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아시안게임 코칭 스태프에 '보은'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감독님과 코치님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어 "병역혜택에는 자유로운 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 선생님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것만 생각한다. 현 대표팀은 굉장히 좋은 기억이 있는 팀이고 나에겐 특별한 애정이 있는 팀이다. 3개월 전부터 오직 아시안게임 금메달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왔다"라고 말했다.

궁금증은 풀렸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주장을 맡아온 구자철의 현 대표팀을 향한 신뢰와 애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해 U-20 월드컵 8강의 주역들이 주축을 이룬 대표팀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과 가장 믿고 의지하는 동료들이 함께 하는 팀이었다.

구자철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해 그들과 함께 큰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자세는 강한 리더십으로도 이어졌다.

구자철은 '와일드카드' 김정우와 짝을 이뤄 대표팀의 중원을 이끌었다. 또한 주장으로서 동료들의 집중력을 이끌어내고, 위기 상황에서는 팀을 다독이며 대표팀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조별리그 요르단전에선 직접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첫 승을 견인했고,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는 홍정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승 진출을 눈 앞에 둔 마지막 순간, UAE를 상대로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며 구자철의 금메달 꿈은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주장이었기에 책임감도 컸고, 모든 게 내 잘못인것만 같았다.

UAE전이 끝난 뒤 구자철은 "오늘 보여진 게 우리가 준비한 것의 결과다"며 운을 띄운 뒤 "솔직히 이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역대 어떤 대회에 나갈 때보다 철저히 준비했는데 아쉽다. 결국 이게 내 지금의 능력이 아니겠는가"라며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값진 경험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실패했지만, 현 대표팀은 가깝게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나서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축구의 10년을 이끌어갈 재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장' 구자철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다. 이런 리더가 있는만큼 지금의 실패는 훗날 성공의 씨앗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제 '어린 왕자'란 말보다 '캡틴'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구자철. 팀을 사랑하고, 동료를 신뢰하고, 감독을 존경할 줄 아는 그의 자세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쉬운 패배고 쓰라린 실패지만 지금은 그의 등 뒤에 격려의 박수만을 보내고 싶은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객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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