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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추석엔 달을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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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 늦은 여름휴가차 다녀온 싱가폴의 한 백화점. 지하1층 행사장의 왁자지껄함이 지나던 관광객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행사장 곳곳에 '中秋'자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걸 보니 추석과 관련된 행사장인듯했다. 과연 행사장에서는 중화권에서 추석을 상징하는 각종 월병을 팔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모양은 또 어찌 그리 이쁜지...월병을 한입 깨어물며 '아! 추석이구나' 싶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예쁜 문양의 월병들. 달을 닮아 월병은 본래 둥근 모양이지만 최근에는 각종 모양의 화려한 월병들이 나오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예쁜 문양의 월병들. 달을 닮아 월병은 본래 둥근 모양이지만 최근에는 각종 모양의 화려한 월병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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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갓 수확한 햇곡식, 햇과일과 모처럼 모이는 가족간의 정으로 풍요로운 명절. 추석은 또한 달의 명절이다. 일년 중 가장 달이 둥글고 밝다는 추석에 사람들은 달에게 소원을 빌곤 한다. 추석에 보름달을 보면 3년간 무병장수한다고 해 보름달맞이는 추석 때 빠지지 않는 행사이기도 하다.
그런 추석의 보름달과 꼭 빼닮은 명절 음식이 있으니 바로 월병(月餠·위에빙)이다. 월병은 중국의 대표적인 추석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선 흔히 중국의 송편이라고 한다. 월병은 이름은 물론 둥근 모양까지 보름달을 상징한다.

매년 추석이면 월병은 노릇노릇하게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피와 팥, 과일, 육류, 약재, 전복, 해삼, 초콜릿 등 갖가지 소로 사람들의 입맛을 끈다.

매년 추석이면 월병은 노릇노릇하게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피와 팥, 과일, 육류, 약재, 전복, 해삼, 초콜릿 등 갖가지 소로 사람들의 입맛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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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은 추석 음식이지만 중국에서 월병의 비중은 추석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중추절(中秋節·중추제)이라고 부르는 추석은 어마어마한 인구 대이동이 이뤄지는 설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크게 여겨지지 않는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이 설과 양대 명절로 꼽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에 처음 갔을 당시 가장 이상했던 점이 추석 때 쉬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퍼나 시장에 가면 달랐다. 정상근무하며 명절같지도 않게 보내는 추석이었지만 그곳에서만은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추석이 다가오면 백화점, 시장, 슈퍼마켓 그리고 음식점까지 월병 판매 전쟁에 돌입한다. 중국인들은 추석을 특별하게 보내지는 않지만 추석 때 월병을 먹거나 선물하는 것은 빼먹지 않기 때문이다. 추석이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 마련된 특설 가판대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포장지로 장식된 월병들이 손님들의 시선을 끌고 포장을 벗겨내면 노릇노릇하게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피와 팥, 과일, 육류, 약재, 전복, 해삼, 초콜릿 등 갖가지 소가 입맛을 끈다.
월병 하나만으로 추석을 난다고 할 만큼 중국 추석에서 월병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월병 시장 규모는 약 110억위안(약 1조9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 규모만 봐도 중국인들에게 월병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추석 음식으로 월병을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예로부터 고대 중국의 제왕들은 봄에는 해에, 가을에는 달에 제를 지냈다. 이는 점차 민간으로 전해져 백성들은 매년 음력 8월15일 중추절이 되면 달에게 절을 하고(拜月) 제를 지내게(祭月) 됐다. 초기의 월병은 달에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이는 제례 음식이었으나 점차 명절을 즐기는 음식 겸 선물로 자리잡게 됐다. "음력 8월15일 둥근 달이 뜨면 중추 월병의 향 또한 달달해진다(八月十五月兒圓, 中秋月餠香又甛)"는 속담은 추석날 밤에 사람들이 월병을 먹는 풍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빙피(氷皮)월병. 빙피라는 이름은 찹쌀가루로 만든 흰 피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빙피(氷皮)월병. 빙피라는 이름은 찹쌀가루로 만든 흰 피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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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병의 기원은 당나라 때로 추정된다. 당 고조 때 대장군 이정(李靖)이 흉노를 토벌하고 8월15일 개선해 돌아오자 한 투루판의 상인이 이를 축하할 때 쓰라며 황제에게 떡을 바쳤다. 당 고조 이연은 화려한 상자에서 둥근 떡을 꺼내 하늘의 밝을 달을 보면 말하기를 "장수를 맞이하기 위한 떡이 달을 초대했다(應將胡餠邀蟾여蟲+余)"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떡을 군신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또한 낙중견문(洛中見聞)에는 당 희종이 중추절 당일 어선방에 명하여 붉은 비단으로 싼 떡을 새로 과거에 급제한 진사들에게 하사토록 명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때까지 아직 '월병'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월병이 기록된 가장 초기의 기록은 남송대 오자서가 쓴 수필집 '몽량록(夢梁錄)'이다. 몽량록에는 "당시 월병은 마름꽃 모양으로 국화병과 매화병 등도 있었다"며 "사시사철 언제든 있었고 구하고 싶은 때 구할 수 있다"고 전해 당시 월병은 추석에만 먹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송대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작은 월병을 먹는 것은 달을 베어무는 것과 같으며 바삭바삭하고 엿과 같은 단맛이 있다(小餠如嚼月,中有소酉+禾和飴)"고 표현했다.

월병은 오랜 세월을 거쳐 중국에서 추석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런 문화의 영향으로 중국 본토 뿐 아니라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화교들이 많은 싱가폴까지도 추석이면 으례 월병을 찾게 됐다. 이번 여름휴가 때 홍콩, 마카오, 싱가폴을 거치면서 이같은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카오에서 방문한 현지 친구의 집에서는 저녁식사 후 월병을 대접받았다. 추석이 가까워졌다며 자신의 집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에게 중국 전통의 월병을 맛보여주고 싶었다고 그 친구는 말했다. 이어 홍콩에서는 지하철역 벽을 온통 장식한 월병 광고를 만날 수 있었다.

외국 아이스크림업체 하겐다즈에서 선보인 초콜릿 월병. 최근에는 이런 퓨전 월병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외국 아이스크림업체 하겐다즈에서 선보인 초콜릿 월병. 최근에는 이런 퓨전 월병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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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월병은 밀가루, 라드, 설탕이나 물엿, 달걀 등으로 피를 반죽하고 팥 등의 소를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나무틀에 넣어 모양을 낸 후 구워낸다. 구워낸 월병은 노릇노릇한 연한 갈색을 띈다. 중국인들이 추석마다 즐겨먹긴 하지만 월병은 너무 기름지고 느끼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런 불평을 감안한 탓인지 최근에는 기름기를 쏙 뺀 단백한 월병이 인기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이 월병은 겉피가 황금 갈색이 아닌 흰색이었다. 흰색인 피 색깔 때문에 '빙피(氷皮)월병'이라 불린다. 마카오 친구 집에서 맛본 월병도 바로 빙피월병이었고 홍콩의 광고판에서도 이를 볼 수 있었으며 싱가폴의 백화점 행사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도 이 월병이었다. 빙피월병은 찹쌀가루에 녹말, 우유, 슈가파우더, 식용유 등을 넣어 반죽한 것을 쪄낸 후 안에 소를 넣고 모양틀에 찍어낸다. 특히 피 자체가 흰색이기 때문에 색소 등으로 다양하게 색을 낼 수 있어서 더욱 화려한 월병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빙피월병들은 하나같이 공들인 수공예품 같아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빙피월병들은 하나같이 공들인 수공예품 같아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빙피월병들은 하나같이 공들인 수공예품 같아 먹기가 아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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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날이 흐리고 비 예보도 있어 달맞이를 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대신 달을 쏙 빼닮은 월병으로 이색적인 추석 분위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송화정 기자 yeekin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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