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병여러분, 제 기사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한국의 신발산업은 1919년 민족자본이 고무신을 생산하면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특유의 손기술과 저임금,근면성 덕분에 우리나라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글로벌 신발 메이커들의 생산기지가 됐다.
일부 기업들은 주문자제작방식(OEM)으로 생산하면서 기술을 축적했고 일부는 독자 브랜드로 명성을 날렸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많은 기업들이 한국을 등지고 중국 등으로 떠났지만 신발산업은 무시못할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군 장병들에게 보급하는 전투화도 신발산업 발전만큼이나 많은 발전을 해온 게 사실이다. 6·25전쟁기간 참전 군인들의 발 고생은 처참했다. 쉽게 닳아 헤지는 고무나 천 재질의 운동화(통일화)를 신고 참전했던 한국군은 전리품 가운데 전투화를 가장 먼저 챙겨 신었을 정도로 전투화 때문에 애를 먹었다. 북한은 치밀한 남침준비를 하며 전투화도 전군에 보급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후 우리 군의 전투화는 많이 변했다. 신기만 해도 태권도 공인 1단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발목보호 등 안전성도 높다.
기자는 지난 해 8월 신형전투화가 개발돼 곧 군에 보급된다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날 군과 전투화 제조업체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기자에게 전화를 해 전투화 자랑에 열을 올렸다. 신세대병사의 체형과 전투환경을 고려해 치수를 세분화했다느니 기존의 딱딱한 가죽과 쿠션없는 바닥창을 개선했고, 무게를 줄이고 가죽도 방습과 투습기능을 향상시킨다는 등의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개발주체가 아닌 업체도 자기들도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만들 자신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흐른 2일 기자는 신형전투화가 물이 새는 불량품이라는 기사를 써야만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1년전 명품이라고 자랑하던 전투화기술의 주인공들은 말이 없다.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봤더니 군당국과 업체들은 서로 남탓만 하는 답을 내놓았다. 업체는 군이 연구개발해서 자기네들에게 제시한 국방규격에 따라 만들었는데 그 규격 자체가 잘못돼 불량품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군은 업체가 규격대로 만들지 않아 불량품이 속출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일부는 품질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은 산하기관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아무도 자기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신형 전투화가 나오면 발뒤꿈치가 까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장병들만 애가 탈 뿐이다.
때문에 신형군화가 최신형이라고 보도한 기자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우리 장병에게 "이제 무좀과 발뒤꿈치 물집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헛된 희망만 심어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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