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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나의 여인이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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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삭막함, 그 안에서의 건조한 삶을 조금이라도 촉촉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예술과 친하게 지내기라는 생각으로 문화 산책에 나섰습니다.

신의 손이 조각하듯이 완벽하게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을 듣는 로댕의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차가운 조각 속에 인간의 고뇌, 욕망, 사랑, 증오를 열정적이고 감성적으로 담아낸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미술사의 격변기인 19세기 후반에 공공 기념물의 장식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조각을 순수 창작 미술의 독립적인 분야로 만든 그의 위대함이 무얼까 생각하며 작품을 찬찬히 음미했습니다.

전시의 출발은 ‘신의 손’입니다. 오른손에 아담과 이브를 움켜쥐고 있는 이 작품은 조물주를 상징하는 동시에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을 암시합니다. 왼손으로 웅크린 여인을 쥐고 있는 조각 ‘악마의 손’도 있었습니다. 왜 왼손과 오른손을 그렇게 구분을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힘이 느껴지는 남성의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의 ‘생각하는 사람’은 무척 눈에 익은 작품입니다.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꿈을 꾸는 남자는 몽상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창조를 위해 생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명성을 얻기 전 로댕은 고독했다. 명성을 얻은 후 그는 더욱 고독해졌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늘 바쁜 척 뛰어다니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 사랑 까미유!

미의 여신이여, 속삭이는 꽃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매일 그대를 볼 수 없다면 난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이야”

"솔직히 너를 잊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는 너의 끔찍한 힘을 느낀다. 너를 보지 못하면 끔찍한 광기가 시작된다. 나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는다." 로댕이 클로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클로델은 "선생님이 여기 있다고 믿어보려 옷을 다 벗고 잠이 들지만, 눈을 떠보면 현실은 더 이상 꿈과 같지 않아요. 더 이상 나를 배신하지 않으셔야 해요"라고 로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둘의 절절한 사랑은 차가운 돌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입맞춤’, ‘영원한 우상’, ‘탐욕과 욕정’에서 보듯이 클로델은 로댕에게 작품의 영감을 주는 뮤즈였기에 로댕의 모든 작품에서는 클로델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클로델에게 있어서 로댕이 그녀의 전부였기에 사랑의 결말은 비극적입니다.

클로델의 작품에는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게 되기까지 너무나 가련하고, 애절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 스며있습니다. 로댕을 벗어나 온전하게 홀로 설 수 없었던 자신의 불완전한 일생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잘 설명하는 한쪽으로 쏠린 구조의 작품 ‘왈츠’를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인가, 죽음인가? 두 사람의 육체는 젊고 펄펄 뛰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과 함께 돌며 그들 뒤로 끌리는 주름진 옷은 수의처럼 펄럭인다. 그들이 춤추며 가는 곳이 어디인지, 그것이 사랑인지 죽음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위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슬픔은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죽음으로부터 온 것 같다. 아니면 죽음보다 더 슬픈 사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예술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포기한 후 동생 폴에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까미유 클로델이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신감을 갖게 됨을 우리도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시장을 떠나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클로델의 작품이 있습니다.

로댕의 사랑,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동시에 갈구했던 여인의 자화상처럼 느껴지는, 무릎을 꿇은 채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 '애원하는 여인 혹은 간청하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또 다른 애원하는 모습이 겹쳐집니다.

클로델의 경우와는 반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자신의 조각을 사랑하고, 그 조각의 여인과 결혼한 피그말리온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입니다. 키프로스의 여인들이 나그네를 박대하다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 나그네에게 몸을 팔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피그말리온은 여성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어 결혼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하고 완벽한 그 모습에 반하여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조각상이 진짜 여자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더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며 그가 원하던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감동해 소원을 들어준 것이지요. 자신이 꿈에 그리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복잡한 현실을 떠나 도심 한가운데서 예술과의 만남은 또 다른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자신의 조각에 “나의 여인이 되어 주오!”라고 간청하며 매일 사랑했더니 그 소원이 이루어졌듯이 꿈과 소망을 가지면 현실이 달라진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더라도, 마음속에서 믿고 기다리면 좋은 결과로 변하게 만드는 신기한 능력이 우리마음에 있다는 사실를 알았습니다.


오현금 토포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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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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