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울로 코엘료는 ‘11분’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다. 11분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평균 시간을 말한다.(정신적 사랑이 아니다)


‘12’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술자리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고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2시간을 넘지 못했다.

‘142’
이 글을 작성중인 7월 22일 오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검색창에 ‘강용석’이란 주제어를 쳐 넣고 검색했다. 강용석 의원의 술자리 발언을 보도한 첫 기사를 찾기 위해서였다. 10개의 기사를 보여주는 검색 페이지를 142번 넘기고 나니, 첫 기사가 나왔다.
142×10=1,420. 55시간30분 사이(20일 03시~22일 10시30분)에 1,420건의 ‘강용석’ 기사가 쌓인 것이다. 1시간에 25건씩, 그러니까 2분 여 간격으로 1건씩 생산된 셈이다.


‘20’
뉴스검색창에서 그의 술자리 발언을 보도한 첫 기사를 찾는데 약 20분 걸렸다. 142페이지를 일일이 클릭하지 않고 ‘다음페이지’를 눌러 뭉텅뭉텅 들어갔는데도 20분이 걸렸다.(엄청난 끈기가 필요했다)

‘177’
그리고 찾아낸 기사는 중앙일보가 조인스닷컴에 올린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였다. 2010.07.20 03:00 입력/2010.07.20 10:21 수정. 댓글은 177건 달려있다. 글로 옮길 수 없는 험악한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385’
두 번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 여대생 성희롱 발언 파문..대통령 이름까지 거론」이란 제목에 「"남자는 다 똑같다”, “다 줄 생각을 해야” 수위 심각」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입력 2010.07.20 07:11/수정 2010.07.20 12:48. 본문 가운데 “2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이란 표현이 있는 걸로 봐서 중앙일보를 추종 보도한 것으로 보인다. 댓글은 385건인데 ‘관리자가 (비속어/비하) 사유로 삭제’해서 내용을 볼 수 없는 댓글이 상당수 눈에 띈다.


‘1420’
중앙과 조선의 보도는 ‘팩트 전달’이란 점에서 ‘진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실제로 강 의원은 첫 보도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1420건의 기사 가운데 흥미를 유발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기사가 적지 않다. ‘공중화장실, 부친의 전력, 장학퀴즈, 자수성가형 엘리트, 대통령과 사돈’ 등의 내용을 전달한 기사들이다. 가족사를 뛰어넘어 심지어 그의 머릿속 해부를 시도하는 기사도 있다. (특히 팩트가 확인되고 당의 제명 조치가 발표된 이후에 이런 류의 기사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자!)


‘2176’
‘쓰러지면 밟고 지나가는’ 건 언론의 못된 습성 가운데 하나인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유독 심하다. 익명성이란 가면을 쓰고 댓글이나 클릭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네티즌의 속성 탓이리라. (기사를 쓰는 기자도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네티즌 중 한 명이 된다!)


1,000건이 훨씬 넘는 ‘강용석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신 대학생들이나(그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힘들어 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 ‘강용석 블로그’(인터넷의 선정성을 공략해 가독성을 높이려는 생각이었는지 그의 블로그에는 유난히 많은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담겨있고, 이 정보들이 마침내 흘러나와 기사화되면서 그의 입지를 좁히고 있는 ‘자승자박’ 형국이다)에서 취재한 기사 말고, 이제는 직접 그를 만나 취재한 기사를 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인터넷이 무섭다는 생각. 공인은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 넘어지더라도 인터넷으로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 등등.


그러던 차에 재미있는 기사를 만났다. 언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스페셜 리포트]아이패드 돌풍이 미디어 혁명으로..'신뢰받는 언론, 아이패드로 날개 달다' 라는 제목으로 조인스닷컴에 표출된 중앙일보 기사(2010.07.22 00:15 입력/2010.07.22 00:15 수정)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는 신문·잡지의 텍스트·사진·동영상을 한데 버무려 지금까지와 다른 미디어 환경을 서비스한다.
- 미국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에 따르면 아이패드를 구입하려는 미국인 2176명 중 64%가 신문·잡지를 읽는데 태블릿PC를 활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 전문가들은 콘텐트 경쟁력을 쌓아온 기존 언론들이 소셜네트위크서비스(SNS) 기능을 껴안으면서 콘텐트 유료화와 더불어 새로운 광고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특히 신문 콘텐트의 경쟁력은 여전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기사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


“나의 강한 신념 중 하나는 모든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건전한 언론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다. 신문의 뉴스 취재와 편집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 나라가 블로거들의 나라로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검증받은 언론의) 훌륭한 편집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와 같은 매체가 계속 뉴스를 전달하고 사설과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꼭 돕고 싶다. (아이패드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어렵게 얻은 뉴스 콘텐트를 (독자가) 돈을 내고 보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음악 분야에서도 그랬듯 소비자들이 뉴스 콘텐트를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 할 것으로 믿는다.”


잡스 말처럼 나 역시 이 나라가 블로거들의 나라로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잡스가 말하는 블로거와 언론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냄비처럼 끓는 한국의 여론을 실시간으로 충실히(때론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 과잉 포장하여) 보도하고 있는 국내 언론이 아이패드로 날개를 달 수 있을지 궁금하다.(진정으로 그렇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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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온라인뉴스본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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