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박물관.. 사람, 봉황, 용, 새 등 꼭두 2만점 모여
$pos="C";$title="";$txt="";$size="550,412,0";$no="2010051315232238900_4.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꼭두는 낯익은 곳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떠나는 이를 동행하면서 그를 지켜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존재입니다"
$pos="L";$title="";$txt="";$size="220,329,0";$no="2010051315232238900_2.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지난 달 29일 서울 혜화동 동숭아트센터 건물 2층에 꼭두박물관을 개관한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사진)는 "꼭두를 통해 문화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극단 '낭랑', 동숭아트센터, 문화재단, 하이퍼텍나다 영화관, 박물관 모두가 꼭두와의 인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가 1970년대 후반부터 모아온 꼭두는 초월적인 존재를 본떠 만든 나무 조각상이다. 대표적인 게 상여꼭두로 상여를 장식하는 인물상과 동식물 형상을 하고 있다.
김 대표가 이십대부터 지금까지 수집한 꼭두는 2만여점. 과거 청계천 5가에 있는 고미술상 시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을 돌며 모은 것들이다. 김 대표는 수집한 꼭두를 박물관에서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한편, 미국의 5개 주에서의 순회전시도 함께 벌이고 있다.
$pos="R";$title="";$txt="";$size="176,233,0";$no="2010051315232238900_7.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김 대표는 "1980년대 당시 꼭두는 다른 물건들에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싸서 몇 천 원에 사거나 그냥 얻어오기도 했다"면서 "꼭두가 내 방안에 하나 둘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꼭두와 유대감이 쌓이면서 그들을 살리는 작업들을 하면서 저의 인생은 많은 변화를 이뤘어요"라고 회고했다.
개관이후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는 사람 모양의 꼭두를 비롯, 봉황, 용, 새 등의 꼭두 등 종류도 다양하고, 아담한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꼭두가 관람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특히 김 대표는 꼭두와 가진 인연을 소개하는 '기획전시'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제 강점기 순사복장을 한 꼭두도 있어 당시 의복이나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현재 이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는 꼭두는 400점. 센터 지하에 있는 두 개의 수장고에 700여점이 보관돼 있다. 나머지 1만9000여점은 경기도 덕소에 마련한 수장고에 있다. 때문에 박물관 유물팀 직원들은 일주일에 2~3번 덕소 수장고를 다녀온다.
이 박물관은 꼭두문화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김 대표가 박물관을 개관하기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반 설립한 것으로 상례와 유교, 종교학을 꼭두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pos="L";$title="";$txt="";$size="140,186,0";$no="2010051315232238900_8.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박물관 전시팀 김향빈 연구원은 "꼭두를 만든 사람은 상여를 만드는 이름없는 장인들이었다"면서 "아쉽게도 마을의 솜씨좋은 상여장인들의 맥은 끊어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장례가 끝나면 상여를 태워버리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상여나 꼭두는 매우 귀하다고 했다. 현재 남아있는 나무상여는 19세기나 20세기 초의 것들이 대부분인 이유다.
꼭두문화연구소 임현수 연구원에 따르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여로 꼽히는 것은 청풍부원군 김우명씨의 상여다. 17세기의 것으로 춘천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붙어있는 꼭두도 상여와 같은 시기의 것인지 그 이후의 것인지는 연구를 더 해봐야 안다.
임현수 꼭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꼭두가 처음 생겨난 시기를 꼽기는 아직 힘들다"면서 "무덤 부장품까지 꼭두로 본다면 그 외연이 넓기도 하거니와 상여꼭두만 쳐도 상여를 대를 달리해 썼던 풍습도 있어 그것의 장식품인 꼭두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과학적 사료채취를 통한 조사말고는 알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귀족이나 왕실에서 쓰인 상여는 가마형으로 용이나 봉황 장식의 꼭두가 많고, 사람모양의 꼭두는 1~2개 정도일 뿐 간소하다. 반면, 가옥형인 민간 상여는 집모양에 사람장식이 많고, 오히려 장식이 화려하다고 했다. 망자의 영혼이 머무르면서 영원히 그곳에 산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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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연구원은 "꼭두라는 흥미로운 유물을 개인이 수집하기란 쉽지 않은 만큼 전시회의 의미는 각별하다"면서 "첫 전시라 규모가 아직 작고 미흡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전시와 체험교실을 열어 꼭두를 잘 알릴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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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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