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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명함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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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디자이너. 생소한 직업이지요? 그런데 그런 직업이 있습니다. 얼마 전 받아본 명함입니다. 그 명함을 건넨 사람은 20대 후반의 청년. 젊은이 답지않게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세대를 뛰어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이 생일을 맞은 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나봅니다. 2년후 은퇴계획을 갖고 있는 그의 부친은 은퇴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이에 대비해 벌써부터 시골을 오가면서 농사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명함을 만들어 건넸습니다. 명함에 새겨진 직업은 ‘자연설계인’이었습니다.

명함 뒷면이 더 재미 있습니다. 멋진 나무 한그루가 그려져 있고 인생탐험가, 자연농사꾼, 지리 연구가라는 멋스러운 단어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단순히 농사만 짓지 말고 더 큰 꿈을 꾸기를 바라는 아들의 바람을 새겨 넣은 것이지요.

아버지를 위해 고급 가죽으로 된 명함케이스에 명함을 담아 선물했다고 합니다. 아들과 함께 설계하는 은퇴가 돼 버린 셈입니다. 행복한 은퇴준비 모습을 보며 정말 아름다운 아버지와 아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며 일본의 단카이 세대를 떠올렸습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부머세대를 말합니다. 전후 3년 동안 태어난 세대인 이들의 인구는 800만명이나 됩니다. 그동안 이들은 재정적으로 여유롭고 해외여행 자유화 등 풍족한 문화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고, 은퇴후 생활을 즐길일만 남은 이들에게 남모르는 커다란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40세가 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자녀들, 니트족이 그들의 자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미혼 자녀들의 심리나 자녀 출가시키기 노하우 세미나에 많은 단카이 세대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대학만 마치고 나면 부모 도리는 다했다는 생각이 큰 차질을 빚으며 은퇴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하철이나 신문에 보면 왕년에 인기있던 60대 여배우들이 결혼전문가로 나선 결혼정보회사 광고가 많이 눈에 뜨입니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자녀로 인한 고민이 비단 이웃나라 노인들만의 고민이 아닌 듯합니다.

은퇴준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녀교육비 지출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제대로 독립하지 못할 경우 부모는 다 큰 자식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찍부터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은퇴준비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공부만해라, 나머지는 아버지가 다 해 줄게” 하며 키워놓은 자녀들이 도통 홀로 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도리가 어디까지라는 교과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무한책임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청년실업 100만 시대, 무한책임을 진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은퇴 준비는 불가능한 꿈이 돼 버렸습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 그들은 은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준비된 은퇴가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 계속 우뚝 서 자녀들을 책임지기에는 젊지 않은 나이, 그러나 뒷방 노인으로 물러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간 끈끈한 사랑, 관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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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봄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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