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 DNA서 찾는다
<1>삼성그룹 호암 이병철 ⑥-최종
글로벌 삼성 新 100년 등대로
1988년 부친 이어 회장 취임 '제2창업' 선언
스피드경영-창조경영 등 고비마다 승부수
쉼없는 업그레이드로 세계 일류 기업 성장
[아시아경제 김정민 기자]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세상이 태어난지는 100년, 그리고 그의 서재를 장식했던 한문 휘호처럼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세상을 떠난지는 2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논어를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을 정도 유교적 문화를 중시해온 그였지만 삼성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서는 단호했다. 이 회장이 '장자승계'의 원칙을 무너뜨리며 그룹을 물려줬던 3남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삼성을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일구며 쌓아온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가장 가까이서 배우고 익혀, 계승ㆍ발전시켜낸 '청출어람'의 수제자다. 부친이 평생 지켜온 '사업보국', '인재제일주의' 경영철학은 이건희 회장대에서 'GDP 2만달러시대를 위한 천재 육성'으로 집약됐다.
$pos="C";$title="이건희 회장 취임식";$txt="1987년 12월, 호암 이병철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제2창업'을 선언하며 세계속의 삼성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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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업'나선 이건희 회장 =1988년 3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장, 이건희 신임 삼성 회장은 필사적이었다.
4개월전 타계한 부친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을 이끌게 됐지만 '삼성=이병철'이라는 수십년간 임직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굳어진 이미지를 깨고 삼성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위상을 바로 세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1위'라는 타이틀에 안주하려는 임직원들을 흔들어 깨워야 했다.
이 회장은 이날 "삼성의 체질을 더욱 굳세게 다져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키워 나가고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에게 더욱 봉사하는 삼성을 만들어 나가자"며 ▲자율경영 ▲기술 중시 ▲인간존중으로 요약되는 '제2창업'을 선언한다.
이날 기념식장에서 발표한 '제2창업' 선언은 이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지며 양위주의 경영에서 질 위주의 경영으로 삼성의 체질을 180도 바꾸는 시발점이 됐다.
훗날 이 회장은 '제2창업' 선언 배경에 대해 직접 밝힌 바 있다.
그는 1993년 5월, 한국경영학회 경영자대상 수상강연에서 "삼성이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었다는 점과 저희 선대께서 얼마나 강력했던지 삼성하면 이분의 명함이 절로 나올정도의 대명사 같이 되고 부의 대명사 같이 인식되는 분위기에서 수성 자체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회고하며 "국내 정상기업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과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세계 일류 기업이 되어야겠다는 의지로 제2 창업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pos="C";$title="역설하는 이건희 회장";$txt="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선언은 삼성이 양 위주의 경영에서 질 위주의 경영으로 체질을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size="550,388,0";$no="2010012810331539272_2.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오쿠라호텔에서 태동한 두번의 승부수 =이병철 회장이 매년 새해마다 경영구상을 가다듬던 일본 동경의 오쿠라호텔은 이건희 회장대에 와서도 삼성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삼성의 운명을 바꾼 두번의 중차대한 결정이 모두 이 호텔에서 이뤄졌다. 선대인 이병철 회장이 1983년 74세의 나이로 반도체 진출을 선언, 반도체 신화의 태동을 알린 오쿠라호텔에서 이건희 회장 또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말로 대변되는 '신경영'을 구상을 가다듬었다.
1993년 6월 4일, 삼성전자의 디자인고문을 맡고 있던 후쿠다 고문이 오쿠라호텔에서 이 회장에게 건넨 '후쿠다보고서'는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던 비행기안의 이 회장으로 하여금 "보고서를 읽으며 마음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었다"고 할만큼 충격을 던졌고 프랑크푸르트에 갑작스레 소집된 삼성 사장단과 임원진 200여명으로 시작된 비상경영회의는 삼성의 체질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후일 "선언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고 임원진 회의의 결과도 아니었다. 신경영을 선언하였을 때 나는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혼자서 거대한 책임의 산 앞에 서있는 것 같은 절대고독을 느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삼성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추진한 '신경영'은 크게 4단계의 변화ㆍ발전단계를 거쳐 2004년 제2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졌다.
93년 6월, 이 회장이 "삼성이 이대로 가면 초일류 기업 실현은 커녕 3류로 전락하는 벼랑끝에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며 시작된 삼성의 신경영은 처음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소비자는 물론 사회 전반 신뢰를 끌어올리는 '질 경영'으로 시작했다.
이어 한국 경제를 뒤흔든 외환위기를 맞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한편 제품 구상에서 생산까지 이어지는 사이클을 단축하는 '스피드 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이후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가장 싸고 빠르게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 글로벌 경영으로 국제 경쟁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한 삼성은 장기적 안목에서 성장동력이 될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우수 인력 채용과 첨단기술 개발로 세계 TOP 브랜드 진입에 나섰다.
그리고 2003년 6월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맞은 삼성은 또 다른 변화를 모색, '제2의 신경영'을 선포한다. ▲핵심 우수인력을 확보와 육성 ▲지속성장이 가능한 경영체질 확보 ▲신수종 사업 발굴과 육성 ▲정도ㆍ투명경영의 4대 핵심전략은 다시 '창조경영'으로 또 다시 업그레이드 돼 지금도 삼성을 지탱하는 핵심 경영이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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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jm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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