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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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낳은 금세기 대표적 역사가 E.H.카의(Carr)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시간이 되면 후대의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조차 역사가 안고 있는 숙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1990년대를 '느리게 돌아가는 1930년대의 필름'에 빗대기도 했다. 공황과 파시즘, 혁명의 시기였던 1930년대를 이해하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반복되는 역사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1880년대 당시 동아시아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세력을 재편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종이호랑이로 변했고 흑선과 명치유신으로 한발 먼저 외세를 받아들였던 일본은 과감한 정책결정과 신속한 집행으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쇄국 정책의 완강한 빗장 아래서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외세나 근대화에 눈 돌릴 기회조차 없었던 우리의 경우, 중국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형편이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괄목할만한 고도성장으로 뻗어나갔다.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비단과 면직물 제조뿐 아니라 사케, 미소, 간장 등 주요 식품의 가공 산업까지 눈을 돌리는 등 비교우위를 노린 전략이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여기에 비하면 중국은 처절하게 몰락했다. 일본보다 훨씬 나은 지리적 조건은 물론 화약과 나침반, 인쇄술 같은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내고도 일본에 식민지배 되는 수모의 역사를 남기는 오류를 범했다. 과거에 발목을 묶여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 탓이다. 지나친 자부심과 오만이 근대화된 무기는 물론 문호 개방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화려했던 과거가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었다.


이후 100여년의 시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대로 흘러갔고 우리는 지금 21세기 초입에 서 있다.


문득 이 순간 역시 100년이 지난 이후에는 또 다른 역사의 한 귀퉁이로 남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카의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미래를 가늠한다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느낌도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 때는 우리의 후대가 선대인 우리의 행적을 들여다보게 될 텐데 과연 어떤 식의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생각 같아서는 잘 먹고 잘 사는 토대가 완벽하게 잡혀있는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쩌면 100% 만족을 주는 역사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YS 재임 당시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 총수가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직격탄을 날려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온 적이 있다.


문제는 정치가 가장 낙후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시 그의 지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잘 안되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한 재벌 총수의 분노가 얼핏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국회의사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정치 경험을 통해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상생하고 타협점을 모으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량 300여명이 모인 곳이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으로 저마다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제는 관전자를 좀 생각하자는 얘기다.


언론에 단 하루라도 정치의 낙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빠진 적이 없다.


요즘 들어서는 지방의회도 심심찮게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경기도의회 전남도의회 그리고 성남시의회 등의 파행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어찌 그리 잘못하는 일만 본 따서 하고 있는지, 그래놓고 무슨 면목으로 나란히 해외연수는 떠난 건지 얼굴이 뜨겁다.


21세기 세계 정치는 '변화와 개혁'을 화두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른 바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이 주도하던 미국사회가 흑인인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을 계기로 재편되고 있는가 하면 건국 이래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일본 자민당이 하루 아침에 소수야당으로 내려앉아 풍찬노숙하고 있다. 죽의 장막에 가려져 영원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던 중국조차 변화와 개혁의 바람 속에서 중국 전체가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세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온 세계가 다음 세대를 앞서가기 위해서 고민하고 땀흘리며 준비하는 이 때 우리는 100여년 전 구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어서 심히 두렵고 걱정된다. (문 걸어 잠그고 멱살잡이 하다가 21세기를 또 놓치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하는 소리다)


국민은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최고의 정치는 다른 게 아니다.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면 된다. 편안하게 해 달라는 건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수준 정도다. 순박한 국민 마음 하나 제대로 위로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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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괜찮은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자.


꼼꼼한 점검과 진단으로 다음 세대에 괜찮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된 국회로 거듭나자. 그나마 설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국회의원도 스포츠 용병처럼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민원이 발생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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