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품이 돼버린 휴대폰. 앙증맞은 모양에 다양한 기능을 갖춘 이 작은 기계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한때 모토로라와 노키아 휴대폰만을 선호했던 필리핀 국민들은 언제부턴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폰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인 사회의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
6년 전 유학생활을 위해 필리핀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백화점에 가서 부리나케 구입한 첫 물건도 휴대폰이었다. 지인도 친구도 없는 이 낯선 땅에서 인간관계를 넓혀가기 위한 최상의 매개체였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피노이(한국 사람을 한인이라 부르는 것처럼, 필리핀 사람을 피노이라 통칭한다) 문화 속에 뿌리 깊게 박힌 휴대폰의 파워에 대해 몸소 체험하게 된다.
필리핀 통신 기업의 양대 산맥, '글로브'와 '스마트'는 빈부 격차가 심한 필리핀 사회의 80%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저소득층 인구들 중 핸드폰 유저들을 섭렵하기 위해 저요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일 회사 유저들 간에 연락할 경우, 프로모를 신청하면 문자 1개당 1페소(1페소= 24.8원)에 전화 요금은 분당 10페소도 되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생활하면서 아무 지장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학교 공부하고 일하는데 원화로 1만원이면 무난히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심 카드(SIM CARD) 부착형에 선불 요금제 형태가 대부분이니 간편한 번호 개통과 함께 한국처럼 느닷없는 부가서비스의 폐해를 겪지 않아도 되고, 터무니없는 휴대폰 요금으로 재정 파산 신청에 이르지 않아도 된다.
유학 생활 중 잠시 한국에 머무를 일이 있어 2년 간 지냈었는데, 너무 필리핀 생활에 젖어 살았던 탓일까? 한국 문명의 '이기화'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버는 족족 휴대폰 요금으로 나가야 했다. 커플 요금제니 뭐니 아무리 이것저것 달아보고 아껴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한국의 경제나 기술이 우월하다지만, 피눈물 나도록 필리핀의 휴대폰 시스템이 그리웠던 때였다. 저렴한 요금 탓에 피노이 손에는 항상 휴대폰이 붙어있다.
친구들과 헤어질 즈음엔 항상 이 말을 던지곤 한다. “Text Text Kami”. 문자하자는 말이다. 뭐 이건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루 종일 같이 수다 떨고도 헤어지면 무제한 문자 서비스로 한없이 수다를 이어가는.
한번은 학교에서 친구가 되고 싶다며 새벽이고 낮이고 수시로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드러내 놓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베일에 쌓인 채 문자로만 연락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일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들이 변태인 줄 알았다. 멀리서 지켜보고 문자만 하니 말이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신고감이다. 하지만 피노이 베프(Best Friend)에게 물었더니, 그냥 웃어넘긴다. 흔히 있는 일이니 관심 없으면 무시하란다. 그런 식으로 연락해서 결혼하는 커플도 생겨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철저히 문자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번호도 함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스킬도 터득했다. 물어오는 연락처를 적당히 피하는 방법. 그래야 피곤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지난해 9월, 필리핀에는 두 차례에 걸친 태평양 소속 열대야 태풍 '온도이'와 '페펭'의 느닷없는 방문으로 특정 지역이 홍수와 산사태로 집과 농지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재해가 있었다.
비가 내린 지 1시간도 채 안돼 태풍 관련 문자 메시지가 수없이 울려댔다. 태풍의 강도, 진행 경로, 피해 지역의 상태 및 원조 프로모션 메시지 등 전국적으로 걸친 유포였다. 그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재난 지역 구호를 위해 수없이 몰려 들었고, 구호 의 연금과 물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인 나도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와 닿았으니 문자 메시지를 통한 홍보 효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디어나 정부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문자메시지 하나가 국민성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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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에서 지냈을 때보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그리고 교육 등의 중심국이 되길 열망하게 되고, 한국에서 들려오는 자랑스러운 소식들로 어렵고 힘든 이민 유학 생활을 이겨내기도 한다.
대조되는 한국과 필리핀의 지식· 기술 환경이지만, 유학생으로써 작은 바람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항상 정직하게 공익을 위해 존재하고 발전하는 것이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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