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미국과 유럽의 일부 브랜드들이 주름잡던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 전통의 강호들이 주춤한 틈을 타 아시아권에서 신흥 자동차 브랜드들에 치고 올라오는 등 지형도 변화도 극심하다.


26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라프지는 향후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이끌어갈 5인방을 선정, 소개했다.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의 수장은 모두 빠지고 의외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 달라진 자동차 업계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자동차 사장 = GM과 크라이슬러의 위기는 곧 도요타에게는 기회다. 도요타는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부진에도 불구하고 경쟁업체들이 모두 나가떨어진 틈을 타 세계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도요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키오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로, 자동차 레이스 면허를 갖고 있는 자동차 광으로 유명하다. 한 때 ‘도요타라는 성(姓)으로 태어난 것은 내 선택이 아니다’며 가업승계에 대한 부담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위기 속 도요타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본 내에서 상당히 젊은 사장 축에 속하는 53세의 아키오는 개성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키오 사장은 ‘모리조(Morizo)’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독일 뉘르부르그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개발 중이던 렉서스를 타고 직접 참여하는 기행(?)을 펼쳐 보좌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첫째, 바로 뉘르부르그링이니까. 둘째, 24시간 이니까. 셋째는 바로 이 대회가 자동차 개발과 많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니까.”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사실 미국의 대통령만큼이나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취하는 정책 하나하나는 전세계 경제를 울고 웃게 만든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마찬가지.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만약 GM과 크라이슬러에 대한 파산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자동차 업계의 모습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결정이 옳든 그르든 오바마의 개입으로 미국 자동차업계는 상당한 자동차 제조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텔레그라프의 판단이다.


오바마는 GM과 크라이슬러에 500억 달러,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지원하는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릭 왜고너 전 GM사장을 퇴진시키고 크라이슬러로 하여금 피아트와 손을 잡도록 압력을 넣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오바마 혼자의 결정은 아니지만 그의 철학이 반영되지 않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백악관이 중고차 현금보상 제도를 실시, 자동차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것도 오바마가 자동차 업계에 대해 갖는 영향력을 설명해 주는 사례다.


◆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 = 이탈리아 자동차 업체 피아트는 유럽 내에서 아직까지 유력 브랜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피아트의 CEO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품고 있는 야망만큼은 세계 일류 수준이다.


평소 수트보다는 셔츠나 스웨터를 선호한다는 마르치오네는 딱딱한 피아트의 분위기를 개방적으로 바꾸어 놓은 소탈한 인물이다. 하지만 ‘신케센토’를 출시하면서 “우리는 자동차 업계의 애플이다. 이 제품의 우리의 아이팟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만큼은 피아트를 일류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숨은 발톱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마르치오네가 CEO직에 오른 뒤 5년이 지난 지금, 피아트는 자동차 업계의 인수합병(M&A)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피아트가 크라이슬러의 백기사 노릇을 한 것은 물론이고 GM 유럽의 오펠·복스홀까지 넘보는 위치에까지 오른 것. 또 마르치오네가 CEO자리를 꿰차기 직전이 2004년까지 4년 연속 손실을 기록했던 피아트가 2005년 이익을 냈다는 것도 마르치오네의 능력 보여주는 사례다.


마르치오네 CEO는 M&A와 소형자동차가 자동차 업계의 향방을 결정지을 키워드라는 점을 틈만 날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고 텔레그라프는 지적했다.


◆ 앨런 멀랠리 포드 자동차 CEO =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지도, 파산하지지도 않은 유일한 빅3 미국 자동차 업체. 최근 포드의 위상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어쩌면 포드의 존재는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으로 크게 낙심한 미국인들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포드가 위기를 비껴나갈 수 있었던 데는 멀랠리 CEO의 공이 컸다. 그는 취임한 지 3달 밖에 안됐던 지난 2006년 11월, 은행으로부터 236억 달러의 대출을 받으면서 “이 돈이 예기치 못한 일들로부터 포드를 보호해 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금사정이 호황이던 2006년 자금을 확보한 것이 ‘포드 105년 역사상 가장 중대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멀랠리 CEO는 이후 “만약 은행 대출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포드는 GM과 크라이슬러가 주춤한데 따른 반사효과로 올해 3분기 들어 점유율이 전분기 대비 5%포인트 가량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포드 자동차가 오는 11월2일로 예정된 3분기 실적발표에서 자동차 판매의 핵심에 해당하는 북미 영업부 실적이 손익분기점을 찍었음을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지리 자동차 리슈푸(李書福) 회장 = 중국 최대 민간 자동차 업체 지리(吉利) 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SAIC), 인도의 타타 등과 더불어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이머징 파워를 과시하는 대표 브랜드다. 이 업체를 이끌고 있는 리 회장은 중국의 헨리 포드라 불리는 인물이다.


중국이 올해 규모 면에서 미국을 뒤로 제치고 최대 규모 시장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이들 업체들에게 큰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지리 자동차는 이미 영국 택시 제조업체 망가니즈 브론즈(Manganese Bronze)와 손을 잡았고 볼보자동차를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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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회장의 야망은 지난 9월 골드만삭스가 3억34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더욱 부풀어 올랐다. 지리자동차는 골드만삭스의 투자금으로 신기술 도입과 해외 공장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지리 자동차의 성장세가 무서운 것은 자동차에 대한 중국다운 담대한 접근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리 회장은 과거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은 사람들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네 개의 바퀴와 핸들, 엔진만 있으면 된다. 자동차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기술력의 수준은 매우 높지만 나는 그저 그 기술과 부품을 사고 엔지니어들에게 돈을 주면 될 뿐이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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