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눈물나면 선암사 해우소로 가라"<3>
"모든 욕구를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라는 가르침이 있는 곳"
스님들에게 해우소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일까. 왜 젊은 스님들에겐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을 두고도 꼭 해우소에 가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일까. 마침 해우(海雨) 스님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 스님의 장삼자락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해우소는 정신적인 수행 도량입니다. 용변을 보면서도 한 번이라도 더 수행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해우소를 사용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해우소에 가서 용변을 볼 때마다 ‘천수경’과 ‘반야심경’의 한 대목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다시 더 깊게 생각하면서 제 마음을 한 번 더 다스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우소는 저의 소중한 수행 도량입니다. 제 자신과의 싸움, 제 자신의 모든 욕구와 불만을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라는 가르침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해우 스님은 해우소에 대해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선암사 해우소를 일반인들도 아주 좋아한다면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로 가라’는 시를 쓴 시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뜻밖이었다. 선암사 스님한테서 내가 쓴 시 이야기를 들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얼결에 “스님, 그 시를 쓴 시인이 바로 접니다” 하고 말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그만큼 해우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해우 스님과 헤어지고 난 뒤 천천히 해우소 아래쪽으로 내려가 해우소의 뒷모습을 살펴보았다. 뒤쪽에서 본 해우소는 마치 윗칸과 아래칸으로 이루어진 토담집 같았다. 벽은 흙과 돌로 돌담인양 쌓아올렸는데, 만일 이 해우소가 바람 부는 들판에 놓여 있다면 영락없이 멋진 누각이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해우소는 철(凸)자형 2층집이며, 입구는 2층에 있고, 입구를 통해 걸어 들어가면 양쪽으로 남녀가 구분되고, 2층에서 본 대소변이 1층 아래로 떨어져 쌓이게 된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내밀한 부분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
마침 1층 뒷문이 열려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대소변이 떨어져 쌓이는 곳으로 처음엔 어두컴컴했으나 곧 실내가 훤하게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켜켜이 인분이 쌓여 있던 곳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출입구와 출입구 왼쪽 측면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맑은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햇빛도 은근히 바람을 따라 살살 들어왔다. 나는 보수 공사 중인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일반인에게 이토록 해우소 안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내밀한 부분을 나 혼자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황홀했다.
해우소 안
$pos="C";$title="";$txt="나무바닥으로 된 해우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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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동안 그렇게 황홀한 심정으로 그 안에 서 있다가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해우소 2층을 받치고 있는 바위와 구부정한 나무기둥들의 숭고한 자태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내 몸체만한 바위가 몇 개 웅크린 채 놓여 있고, 그 바위 위에 나무 기둥이 몇 개 서 있다. 그 기둥들이 위층의 모든 무게를 받치고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온갖 똥오줌을 뒤집어쓰면서 그들이 견뎌낸 인내의 힘은 바로 사랑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똥오줌 속에 자기 몸을 담그고 오랜 세월 동안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그 보시, 그 희생을 생각하자 한동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해우소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적묵당(寂?堂)’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공양간으로도 쓰인다. 적묵당 바로 앞에는 성인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큰 돌을 파서 만든 물확이 놓여 있다. 그러니까 이 물확을 한가운데 두고 위쪽엔 공양간, 아래쪽엔 해우소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식당과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투 붙어 있는 셈이다. 해우소를 다녀와서 공양간으로 갈 때는 손을 깨끗이 씻어라, 또 공양간을 나와서 물을 먹고 싶으면 그 물을 먹으라는 섬세한 배려가 숨어 있는 공간 배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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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확 옆에는 거울도 있다. 유리로 만든 거울이 아니라 스텐리스로 만든 거울이다. 거울에 현재의 나를 비춰보자 추한 내가 좀 아름다워지는 느낌이, 더러운 내가 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해우소에서 번뇌와 망상까지도 다 비운 뒤 물확에 흐르는 맑은 물을 먹고 거울 앞에 서면 누구나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거울 앞을 떠나 몇 발자국 돌계단을 올라가면 좌우로 연못이 있고, 스님들이 거처하는 건물과 창파당(蒼波堂)이라는 종무소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등 굽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소나무의 수령은 5백년.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야 하는데 땅을 향해 길게 뻗어 있어 더 이상 처지지 않도록 단단히 쇠받침대까지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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