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경제의 명암] - (1) ‘신종플루’보다 더 심각한 ‘경제 불황’


어느 나라건, 어느 사회건 계층은 존재하고 상류층·하류층은 존재한다.

멕시코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국과 함께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던 명성에 비해 빈부의 격차는 너무나 커 보였다.


지난 300여년간 스페인으로부터 지배를 받은 후 독립한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국가 경제 권력은 스페인계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 통계에도 잡히지 못한 500만명에 달하는 원주민 ‘인디오’들은 정부의 사회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거리를, 지방을 헤매고 있다. 같은 이주민의 국가 미국은 소수계층의 상류층으로의 합류가 두드러지지만 멕시코는 여전히 다수를 이루는 경제적 소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車 유리창 닦고 수고비 받는 젊은이= 지난 4일(현지시간) 입국심사를 위해 들어선 멕시코시티 공항. 예상과 달리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역과 관련한 간단한 문답지와 체온을 재는 선에서 입국 절차도 마무리 됐다. 6일 멕시코를 떠나기 위해 다시 찾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시티 시내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신종플루 최초 발병 국가였던 멕시코에서 더 이상 이로 인한 영향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신종플루 대신 멕시코의 고질적인 병폐가 눈 앞에 보인 것은 ‘경기 불황’의 폐해였다. 4일 오후 4시경 퇴근시간인 멕시코 시티 도로에는 갖가지 자동차와 버스,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 시간에 맞춰 거리에는 노점상인들이 보따리를 풀어 DVD, 생필품 등을 팔기 시작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승용차들이 정지하자 어디선가 느닷없이 10대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걸레를 들고 나와 차 앞뒤 유리창을 순식간에 닦았다. 버스나 트럭 등 손걸레로 닦기 어려운 차에게는 대놓고 운전사에게서 돈을 구걸했다. 기자가 타고 있던 버스 운전사에게도 이들이 찾아왔고, 몇 푼의 동전을 받은 그들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저녁에는 3~4살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들이 식당 맞은편에 서 있다가 손님들에게 돈을 구걸하기도 했다. 이런 광경은 교차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현지에서 여행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 진규환 사장은 “경기 불황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졌다”면서 “특히 시내 광장 시장 등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노점상들은 더욱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잃은 사람들 거리로 내몰려= 노점상과 증가하는 이유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산업이 붕괴된 탓이 크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는 미국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제 불황 타격을 직격탄으로 받았다. 주력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영향은 심각하다. 미국의 자동차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멕시코 현지 공장 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멕시코자동차산업협회(AMIA)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이 나라에 진출한 자동차 업계의 생산량은 42.9% 감소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210만대의 절반 수준인 102만대에 그칠 전망이다. 자동차 생산 감소로 인해 멕시코 국내총생산의 1.6%가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올해 멕시코 경제성장률이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놓고 볼 때 자동차 산업 불황이 이 나라에 끼친 영향은 재앙에 가깝다


빅3가 지난 2007년 10월 빅3가 위기에 몰리면서 멕시코는 자동차 산업에서만 현재까지 13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났던 멕시코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실업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달동네 빈민촌이 관광지?= 대통령궁이 위치한 소깔로 광장 시장에는 평일 낮이지만 수 많은 노점상들과 시민,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노점상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대부분 서울 종로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로, 그나마도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들이 상당수였다. 제품을 생산하는 상품이 없으니 대부분 가내수공업 제품이거나 중국에서 들여온 상품일 수 밖에 없고, 물건을 팔아봐야 남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멕시코시티 외곽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빈민촌은 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데, 수개의 산에 걸쳐 벽돌로 쌓고 슬래이터로 지붕을 한 집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960~7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보는 듯한 이 지역을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나마 집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1억2000만명인 멕시코 인구 통계에는 500만명으로 추산되는 원주민 ‘인디오’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사회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채 살고 있다.


멕시코의 대외적인 1인당 국민소득(GDP)은 지난해 기준 1만41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상위 10%를 차지하는 스페인계 멕시코인들이 끌어올린 착시현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멕시코시티 시내에 있는 쌍둥이 빌딩은 ‘멕시코의 타워팰리스’라고 불린다. 멕시코 주요 기업 임원들, 현지 진출한 외국계 기업 임원, 스포츠 스타들이 주로 산다고 한다. 이 건물 맨 꼭대기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의 한 달 숙박료는 9000달러이며 관리비 3000달러를 별도로 내야 한다. 한 개의 산을 뒤덮고 살고 있는 수많은 빈민들이 생활비로 쓰고도 남을만큼 큰 돈이다.


멕시코 부자들은 평일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중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다가 주말만 되면 차고에 보관해 뒀던 페라리를 몰고 주변 휴양지에 구입해 둔 별장으로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럽 등으로 넘어가 사치를 즐기고 온다고 한다.


◆‘오초아’는 우리랑 달라요= 멕시코 국민들은 표면적으로는 부자에 대한 저항감도 없어 보이고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주말이면 삼삼오오 몰려 밤새 축제를 벌이는 낙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잘 사는 게 행복은 아니라는 의식이 팽배해 이들의 행복지수는 매우 높으며, 교육열도 낮고 잘살려고 발버둥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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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멕시코 내에서 수많은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민영웅 골프선수 오초아를 보고도 “그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의 편중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적지 않아 보였다. 이러한 빈부의 격차는 멕시코가 지닌 커다란 잠재력을 가로막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중 하나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멕시코시티(멕시코)= 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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