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의 여자도 여행 3>

외딴 바닷가 마을 반딧불이들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지요


달천에는 하루 네 차례 여자도로 가는 정기항로가 있습니다. 금진호와 새마을호. 10톤급의 이 여객선들은 정원 12명의 승객을 싣고 30분간의 짧은 항해 끝에 여자도에 이르게 되지요. 배 삯은 편도 대인 5천원입니다. 배는 천천히 달천포구를 빠져나옵니다. 아주 작은 여객선인지라 보통의 연안 여객선들이 선창에 닿고 떠날 때 들려주는 스피커의 뽕짝음악 같은 것도 없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는 작은 여객선의 꽁무니에 일어서는 물길들이 조금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군요.

달천 선창에서 누군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난 해 추석 전날 생각이 나는군요. 그날 오후 나는 863번 지방도로에 들어섰습니다. 해지는 갯마을들을 천천히 지나 달천 바다에 이르러 달을 보리라는 것이 그날의 계획이었지요. 마을 안은 조용했습니다. 나는 마을 맨 끝 평소에 바다낚시꾼들이 즐겨 낚시를 하는 선창에 이르렀지요. 완전히 어두워진 뒤 달을 기다리는 시간. 작은 비행체 하나가 가물가물 바다 위를 질러가는 것을 보았지요. 어린 시절 은하수 사이를 깜박깜박 불을 켜고 지나가던 비행체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 비행체의 모습을 골몰히 바라보았지요. 그때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비행체가 나를 향해 날아왔습니다. 어, 하고 놀랄 틈도 없이 비행체는 내 눈 앞에서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날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비행체들이 깜박깜박 점멸등을 켜고 내 주위의 시간들을 물들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아하고, 자유롭고, 환상적인 비행이었지요.



그 비행은 반딧불이들이 빚어낸 축제였습니다. 이 외딴 바닷가 마을의 인적 끊긴 어둠 속 선창 위에 이렇게 많은 반딧불이들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지요. 달천 선창에 달래의 전설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반딧불이들이 반짝반짝 살고 있다는 것은 그날 이후 내 마음 안의 신비한 비밀로 남았습니다. 장마 기운이 한창인 저곳 선창 어느 곳엔가는 무수한 반딧불이들의 생령들이 새록새록 숨 쉬고 있다 생각하니 거대한 시멘트 방파제의 모습조차도 무슨 신비한 꿈의 골격처럼 보입니다.

배 안에서 금진호의 선장 김재학씨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천명의 중간쯤을 지난 그는 카메라를 든 외지인을 보자 금세 자신이 지닌 스트레스 하나를 이야기합니다. 그가 건넨 쪽지 한 장에는 백만 원이 넘는 벌금이 적혀 있습니다. 정원이 12명인데 30명이 넘게 승선을 하였군요. 벌금은 마땅할 진데 그의 애기인즉 평소에는 전혀 단속을 하지 않다가 연말연시나 명절 전후에 해경에서 단속을 나온다는군요. 얼굴을 다 아는 동네 사람 처지에 누구는 태우고 누구는 안태울 수 없어 결국은 다 싣고 나오는데 그걸 위반이라 하여 벌금을 내라하니 미칠 지경이라 합니다. 사는 일이 늘 그렇듯 만만치 않은 일이지요.


"생각하는 것은 길 떠난 자만의 특권이지요"


금진호는 송여자와 마파지 마을을 거쳐 여자도의 가장 큰 마을인 대동 마을에 닻을 내립니다. 30분의 짧은 항해. 달천처럼 이곳 대동마을도 작은 방파제가 있고 생선 알집처럼 생긴 둥글고 귀여운 만을 하나 지니고 있군요. 만을 따라 스무 걸음을 걸었을까요. 초등학교가 눈에 띄는군요. 오, 이런. 오오, 이런. 학교에 들어서며 나는 연신 감탄사를 내뿜습니다. 소라초등학교 여자 분교장. 지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있을 수 있다니! 잔디가 깔린 운동장 안에는 햇살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화단에는 지난 봄날의 꽃들이 아직 피어있고 담장을 따라 동백들의 싱싱한 이파리가 빛납니다. 시소가 놓여 있고 키를 맞춘 철봉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운동장 맨 뒤에는 수백 년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아주 근사한 팽나무 한 그루와 멀구슬나무 한그루가사이좋게?서 있습니다.



나이 든 팽나무 가지가 펼쳐낸 선선한 나무 그늘의 오지랖은 얼마나 넓은지요. 멀구슬나무는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사스레피 나무라고도 불리우는 이나무는 남쪽 바닷가마을들에 의외로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봄에 보라빛의 꽃들이 나무 이파리만큼이나 싱싱하게 피어나는것도 보기 좋지만 이 나무의 오랜 미덕은 눈이 쌓인 겨울날 빛이 납니다. 온 세상이 두터운 눈으로 덮이고 새들이 먹을 먹이조차 쉬 찾을 수 없을 때 이 나무에는 열린 새끼손톱보다 작은 무수한 붉은 열매는 배고픈 새들의 한 끼식사가 기꺼이 되주는것입니다.?남쪽 바닷가 마을의 새들이 굶주리지 않고 오랜 세월 겨울을 넘긴 데는 이 나무의 더기 깊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는?책 읽는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얀 페인트칠이 단정한 그 소녀상을 한 바퀴 돌며 나의 꿈 하나가 또 마음 안에 자리하는 것을 봅니다. 어느 해 여름일지 모르지만 그?여름 이 두 그루의 나무 아래 펼쳐진 그늘을 찾아와 몇 권의 책을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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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와 멀구슬나무 바로 곁은 바다입니다. 이 아름다운 학교는 운동장의 양쪽에 바다를 두르고 있습니다. 교사에서 서른 걸음만 걸어 나가면 곧장 바다에 이르지요. 이곳 바다를 사람들은 섬의 이름을 따 여자만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이날 여자만의 물빛은 한없이 푸르고 맑았습니다. 햇살 아래 펼쳐진 물살들이 운동장 가에 조용히 다가와 무슨 옛이야기와도 같은 나직한 화음을 냅니다. 걱정이 하나 생기는군요. 도대체 이 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어떻게 수업을 하겠는지요. 창문 너머 펼쳐지는 저 싱그런 수평선이며, 물살들의 다정한 목소리들, 섬과 섬 사이를 스쳐오는 한없이 푸른 바람들. 그들의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고 수업을 할 수 있겠는지요.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다가도 바다가 보이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도 바다가 보입니다.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자라서 부모님처럼 어부가 되지 않는다면 명상가나 철학자, 시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아름다운 학교의 학생 수는 단 3명입니다. 이 3명의 학생들이 두 명의 선생님과 함께 동화 속처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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