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가기 싫었어..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1998년 9월 한스밴드라는 소녀 그룹이 발표한 오락실이라는 노래의 한 소절입니다.
이 노래는 IMF 이후 아버지 세대들의 명예퇴직 붐이 일던 딩시 명퇴로 인한 실직으로 인해 오갈데 없는 아버지들의 상황을 묘사한 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었지요.

요즘 이 노래가 자꾸 떠오릅니다. 바로 최근 불어닥친 은행권의 구조조정 한파때문입니다.

범정부차원에서 일자리나누기(잡셰어링)가 확산되는 다른 한편에선 회사에서 짤리고 눈물짓는 은행원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아이러니지요.

실제 지난해 말부터 올 3월말까지 은행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은행원이 2000명도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은행연합회 소속 은행 19곳 중 13곳이 희망퇴직을 완료했거나 진행중이며, 외국계 은행의 경우 4곳 모두 희망퇴직을 실시했거나 절차를 진행중입니다.

은행권의 구조조정 역사는 참으로 오래됐습니다. 특히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제일은행의 눈물의 비디오 사건은 유명합니다.

눈물의 비디오는 IMF 한파가 한창이던 1998년 2월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게된 제일은행 서울 테헤란로 지점 고(故) 이상억 차장의 하루 일상을 담은 8분 분량의 영상물입니다.

그해 초 명예퇴직한 2300여명의 동료도 중간 중간 나와 "남은 사람들이 잘 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으로 이를 본 직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해서 '눈물의 비디오'라는 이름이 붙었었죠.

그로부터 10년뒤, 은행원들은 가슴속에 지우고 있었던 눈물의 비디오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같이 동거동락했던 상사가 명퇴 당하고 올 들어서만 통합 또는 폐쇄 된 점포가 1000여곳에 달하니 오죽할까요.

눈물의 비디오 원래 제목은 '내일을 준비하며'입니다.집에는 차마 얘기 못하고 오락실이나 공원에서 시간때우는 가장들에게 절실한 얘기일 듯합니다.

오락실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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