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신년기획] 돈이 돌아야 내수가 산다
인구 2200만명에 불과한 대만은 우리나라의 영남지역 규모지만 중소기업의 천국으로 불린다. 119만개 기업 가운데 98%가량인 116만개가 중소기업. 지난 97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에 들어갔을 때 대만은 상대적으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이는 중소기업에 대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 체계 때문이다. 대만 은행들은 자금대출 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적극적으로 중소기업에 제공하고 애로사항을 묻는다. 자격만 있으면 대출이 신속하게 이뤄져 기업은 제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금융상황은 사실상 시장마비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아무리 중기 대출을 소리 높이고 관치금융을 내걸어고 외국인 지분이 높아진 은행으로서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SI)비율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회사채 기업어음 매입하고 우선상환주형태 방식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은행의 자금공급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보다 전향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은이 금융위기 이후 20조원 가량의 돈을 풀었도 자금중개기능이 약해진 상황에서 금융권 자금이 기업에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은행의 유동성 공급을 위해 한국은행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를 매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의 중기대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을 은행의 자본항목에 계상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기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광희 선임연구위원은 "우선상환주 형태로의 지원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상환주식이란 주식의 소각, 즉 상환조항(상환가액, 상환기간, 상환방법과 수)를 붙여서 발행하는 우선주의 일종으로 자본에 계상된다. 주로 대기업이 차입할 때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방법으로 이용돼 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빌려주는 은행은 신용위험을 감소시키고 거래은행은 충당금을 적게 쌓아도 돼 BIS기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채권발행이 사실상 마비돼 있는 상황에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발행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2008년 1-10월까지 중소기업 화사채발행규모는 2238억원으로으로 전체 발행액의(20조6000억원)의 1.1%에 불과하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2001년에 경험했던 벤처기업의 프라이머리 CBO의 부실사태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으나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프라이머리CBO발행을 앞당기고 발행규모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중기대출관행 만들고 지방금융 활성화해야
독일을 이끄는 기업의 99.8%인 400여만개 기업이 종업원 500명 이하로 연 매출액이 5000만 유로를 넘지 않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ㆍ중간기업=중소기업과 비슷한 개념)이다.하우스 방크(Haus Bank)로 불리는 독일 은행은 규모의 크기를 떠나 한 기업과 주거래 은행으로 관계를 맺으면 그 기업의 자금 흐름에서부터 매출동향, 심지어는 경영인의 가족 사항까지 체크하며 기업의 여건 변화에 적극 대처한다. 아무리 우량기업이라도 주거래 은행이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 아침에 부도 처리 되는 우리의 기업 환경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도록 중소기업의 금융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애로요인이 너무나 복잡하고 원인도 정확히 진단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금융기관으로서는 중소기업 대출결정에서 고려할 사항이 많아지게 된다.
은행들이 중소기업금융체제를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운용하기 위해서는 개별중소기업의 정보를 집중하고 관리하는 금융기관 내부의 관리기법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 부산본부 윤태길 기획홍보팀 과장은 "재무상황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취급시 획일적인 '신용평가시스템'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지역경제의 특성과 계량화할 수 없는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일선 점포의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금융 활성화의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부산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은 소위 어느 회사에 숟가락이 몇개 인지 알고 단순한 재무제표 외에도 지역사회의 평판, 기업문화, 회사의 장래성, CEO의 자질 등을 고려해 대출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이 거래기업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경영현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활용하는 관계형금융(Relationship Banking)의 활성화도 하나의 방안이다. 관계형금융을 통해 집적된 정보를 필요한 범위내에서 금융기관 상호간 공유하면 영세 중소기업이 은행보다 접근이 용이한 상호저축은행, 신협 등의 지역밀착형 서민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일부에서는 현재 대기업을 대상으로 실사하는 RM(relation management)제도의 확대의 도입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RM은 기업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 각 영업부문 간 정보 교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서울여대 이종욱 교수는 전국은행이 우량 중기와 소상공인을, 지방은행이 시장은행의 지방지점이 적은 것을 보완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대출시장에서 은행접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불리한 신용등급에 처한 기업, 사람들에 대해 새마을금고, 신협 및 저축은행 등은 신용인큐베이터 기능을 할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의 노력만으로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및 금융위원회의 업무영역에서 필요한 사항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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