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車산업, 中 의존도 높아 타격 불가피
中전기차들 유럽에 공장 세워 관세 회피
유럽 브랜드 충성도, 中저가공세 막을 수도
유럽이 결국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프랑스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해 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반색했지만, 유럽의 '자동차 수도' 독일의 고뇌는 깊어지는 모습이다. 회사 존폐 위기에 놓인 폭스바겐 등 '빅3'의 중국 시장 내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보복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생산 현지화를 위해 유럽으로, 유럽 기업들은 기술 협력을 위해 중국으로 향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지형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세와 유럽의 브랜드 충성도가 중국의 저가 공세를 막아낼 것이라는 낙관론과 유럽 자동차 산업의 잠식이 가속할 것이란 비관론이 혼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中에 '관세 폭탄' 투하…독일도 운다
EU 집행위원회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품에 5년간 확정적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은 전기차 업체들이 역내에서 저가공세 펼치는 것을 막겠다는 조치다. 기존 일반 관세율 10%에 7.8~35.3%포인트의 추가 관세를 더해 최종 관세율은 17.8~45.3%에 이른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27%, 상하이자동차(SAIC)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업체들은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 상하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미국의 테슬라조차 최저관세율은 감수해야 한다. 중국 상무부는 추가 협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도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며 경고한 상태다.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 시장을 장악하는 속도를 생각하면 이번 폭탄 관세 조치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에 따르면 EU 전기차 시장의 중국산 판매 점유율은 2020년 2.9%에서 지난해 21.7%로 10배 이상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점유율이 연말까지 25%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중국이 관세 보복에 나설 경우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이미 올해 유럽산 브랜디와 유제품, 돼지고기 등을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흔들리는 유럽의 '자동차 수도'
독일의 자동차 업계 곳곳에선 이미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기차 전환 경쟁에서 밀려난 데 이어 최대 시장인 중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익성 악화로 2026년까지 150억유로(약 22조원) 규모의 비용 절감 목표를 제시했던 폭스바겐은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공장 3곳을 폐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내 폭스바겐 공장은 조립과 부품생산을 합쳐 10곳으로 약 12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다. 현지 언론들은 공장폐쇄에 따른 인력 감축 규모가 최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
중국 시장에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BMW 등 독일 '빅3'의 지난 3분기 중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 15%, 30% 폭락했다. 특히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포르쉐의 경우 전기차 모델 타이칸의 글로벌 수요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매출이 19% 감소했다. 포르쉐는 10년, BMW는 4년 만에 기록한 최악의 3분기 실적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소비자들이 마력, 핸들링과 같은 독일 내연기관차의 전통적인 판매 포인트보다 현지 전기차가 제공하는 기술적 개선을 점점 더 선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약 15%로 팬데믹 이전(25%)보다 많이 줄었다. 특히 전기차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저조한 수준이다.
이처럼 독일의 주력 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국가 경제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업데이트한 세계경제전망(WEO)에 따르면 올해 독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은 0%(7월 전망치 0.2%)로,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경제 성장률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앞서 로버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도 올해 독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0.3%에서 -0.2%로 하향 조정하며 "독일을 지탱하는 수출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역성장에 직면하는 셈이다.
中은 유럽으로, 유럽은 中으로 '각자도생'
EU 규제당국은 폭탄 관세가 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업계 거물들은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가 유럽의 공장 폐쇄를 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관세 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유럽에 공장을 세우면 고용 비용이 많이 드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통의 자동차 강국들이 피를 보게 된다는 지적이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랜티스 최고경영자(CEO)는 "비야디 같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 내 생산 계획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들은 생산 비용이 저렴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로 진출해 관세의 목적을 무색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유럽 내 생산 현지화를 발 빠르게 진행 중이다. 비야디는 첫 유럽 전기차 공장을 지을 부지로 헝가리를 택한 데 이어 최근 튀르키예와도 2026년 말 가동할 연 15만대 규모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비야디는 유럽에 수출되는 전기차를 100% 현지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중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동유럽에서 생산된 중국 전기차는 유럽의 주요 경쟁사들 대비 약 25% 저렴한 가격에 판매될 것"으로 내다봤다. 볼보를 인수한 중국의 지리자동차도 폴란드에 전기차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것처럼 유럽 자동차들은 생존을 위해 '중국화' 전략을 채택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스텔랜티스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접은 뒤 중국 브랜드를 유럽에 직접 도입하는 방식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의 지분 20%를 15억유로에 인수한 스텔랜티스는 현재 유럽 13개 국가에서 200개 판매점을 통해 립모터의 소형 전기차 T03을 판매하고 있다. 프랑스의 르노는 지리자동차와 협력해 연소 엔진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며, BMW는 장성 자동차와 합작사를 설립해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화 필요 vs 침공 막을 것...유럽 車의 미래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럽의 자동차 산업계가 하루빨리 중국 업체들과 손잡고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과 관세 장벽이 중국의 저가 공세를 막아낼 것으로 보는 낙관론이 혼재한다. 스위스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폼의 크리스토프 웨버는 관료주의적인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통상 신제품 개발에 4년이 걸리는 반면, 중국 업체들은 약 1년 만에 신차를 내놓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니오, 지두 자동차 등 중국 전기차 업체의 CEO들은 매주 디자인 회의에 참석해 즉석에서 결정을 내린다"며 "전통적인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경쟁사들의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수용하는 속도를 따라가려면 업무처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유럽의 관세 폭탄으로 인해 서유럽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점유율이 12%(지난 8월 8.3%)를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에서 신차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30대 중반이지만 유럽은 그보다 높은 50세에 달하고,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점도 중국산 전기차의 저가공세 위력을 억제할 수 있는 요소로 지목된다. JP모건의 호세 M. 아수멘디 유럽 자동차 연구 책임자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유럽에서 겪게 될 가장 큰 장애물은 유통망과 브랜드 인지도"라며 중국산 전기차들이 내수를 장악했던 시나리오가 유럽에선 먹히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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