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스코프] 22분 vs 1억도… 인공태양 패권 경쟁, 누가 먼저 '태양'을 안착시키나
프랑스·중국은 '시간'의 한계 도전, 한국은 '절대 온도' 사수… 상용화 향한 결정적 분기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토카막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개념 단면도. 중앙의 밝게 빛나는 영역이 초고온 플라즈마이며, 강력한 초전도 자석이 이를 공중에 띄운 채 가둔다. 아래쪽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장치 규모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제핵융합실험로기구(ITER Organization) 제공
올해 프랑스는 22분을 버텼고, 중국은 1000초의 벽을 넘겼다. 한국 역시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진행된 실험에서 핵융합의 핵심 관문인 '1억도 플라즈마'를 가장 오래 유지했다.
최근 세계 주요 언론의 과학면을 장식한 이 숫자들은 핵융합이 실험실 단계를 넘어 상용화 경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현재 핵융합은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주요 강대국들이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미래 산업 주도권을 걸고 벌이는 '에너지 패권 전쟁'의 최전선이 됐다. 결국 핵융합 경쟁은 단순한 과학 실험이 아니라, 미래 전력망·반도체·수소·우주 산업까지 연결되는 차세대 산업 패권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왜 1억도인가, 인공태양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
핵융합은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원리를 지구에서 재현하는 기술이다.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초고온 상태에서 융합해 헬륨으로 변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리다.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은 사실상 없으며, 연료는 바닷물 속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이론적으로는 바닷물 속 중수소를 활용해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흔히 바닷물 1ℓ가 휘발유 수백 ℓ에 해당하는 잠재 에너지를 지닌다고 비유된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이 아니다. 태양 중심부는 거대한 중력이 압박하고 있어 약 1500만도(℃)에서도 핵융합이 일어나지만, 중력이 약한 지구에서는 그 압력을 대신할 압도적 온도가 필요하다. 그 기준이 바로 '1억도 플라즈마'다. 이는 핵융합 반응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실상의 임계 온도 영역을 의미한다.
철이 약 1500도에서 녹고 태양 표면 온도가 약 6000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1억도 플라즈마는 사실상 지구에서 구현 가능한 가장 극단적인 열 환경이다.
이 온도에 도달해야만 원자핵들이 서로 밀어내는 정전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충돌해 융합할 수 있다. 핵융합은 결국 서로 밀어내는 원자핵을 초고온에서 강제로 충돌시키는 기술에 가깝다.
1억도에서 물질은 전자가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뜨거운 플라즈마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두고 제어하느냐다. 이것이 인공태양 기술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그릇 없는 불꽃을 가두는 '자기장의 감옥', 토카막
1억도에 달하는 플라즈마를 담을 수 있는 물리적 물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어떤 금속도 그 근처에 가는 순간 증발해버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즈마를 공중에 띄워 가두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장치가 바로 도넛 모양의 '토카막(Tokamak)'이다. 플라즈마는 초전도 자석이 만든 자기장 통로 안에서 벽에 닿지 않은 채 나선형으로 순환한다.
레미 뒤몽 프랑스 원자력청(CEA) 연구원은 "핵융합은 단순히 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그 불을 수억 개의 자기장 선으로 묶어 공중에 떠 있게 하면서 오랫동안 길들이는 고도의 제어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핵융합 상용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바로 플라즈마의 밀도, 온도, 유지 시간이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로슨 조건(Lawson criterion)'이라고 부른다.
로슨 조건과 함께 국제 핵융합 학계가 궁극적 기준으로 삼는 지표는 'Q값(에너지 이득 계수)'이다. 이는 핵융합으로 얻은 에너지를 투입한 에너지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Q=1이면 핵융합으로 얻은 에너지와 투입한 에너지가 같다는 뜻이고, Q=10은 투입 에너지의 10배를 생산하는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Q가 1을 넘으면 순에너지 생산, 10 이상이면 상용 발전 단계로 평가된다. 현재 대부분의 토카막 장치는 아직 Q=1을 넘지 못했다.
프랑스 WEST vs 중국 EAST…1337초 vs 1066초
프랑스 CEA의 WEST(Tungsten Environment in Steady-state Tokamak)는 올해 2월 플라즈마를 1337초(22분 17초) 동안 유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냉각 시스템과 내벽 재료가 장시간 열부하를 견딜 수 있음을 보여준 공학적 성과다.
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청(CEA)의 WEST 토카막 내부 모습. 연구진이 텅스텐 내벽 구조를 점검하고 있다. WEST는 플라즈마를 22분 이상 유지하며 장시간 핵융합 운전 가능성을 입증했다. 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청(CEA) 제
원본보기 아이콘WEST의 성과가 특별한 이유는 내부 벽을 모두 텅스텐으로 교체한 상태에서 거둔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탄소를 주로 사용했지만, 탄소는 수소를 흡수하는 특성 때문에 장기 운전에 불리했다. 반면 텅스텐은 초고온에 강하지만 플라즈마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불순물을 발생시켜 제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CEA 연구진은 "이번 기록은 미래 핵융합 발전소에 필요한 장시간 운전 제어 능력이 한 단계 진전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중국과학원 플라즈마물리연구소(ASIPP)의 EAST(Experimental Advanced Superconducting Tokamak) 역시 '시간' 기록에서 독보적이다. EAST는 올해 1월 고성능 모드(H-모드) 플라즈마를 1066초간 유지하며 1000초 시대를 열었다.
중국의 전략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장시간 운전 데이터를 선점하는 것이다. 공 셴주 EAST 운영 책임자는 "미래 핵융합 발전로의 핵심은 장시간 안정 운전이며, 우리는 그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과학원 플라즈마물리연구소(ASIPP)의 핵융합 장치 EAST(Experimental Advanced Superconducting Tokamak) 전경. 중국은 EAST를 통해 1000초 이상 플라즈마를 유지하며 장시간 운전 데이터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학원 플라즈마물리연구소(ASIPP)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한국 KSTAR… '1억도'의 벽을 넘은 기술 강국
반면 한국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는 '질적인 난이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KSTAR는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진행된 실험에서 텅스텐 디버터 환경 기준 1억도 플라즈마를 48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물리적으로 5000만도에서 수십 분을 버티는 것보다, 1억도에서 수십 초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플라즈마 입자들의 운동이 극도로 격렬해지고, 이를 가두는 자기장 역시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플라즈마의 난류와 불안정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는 한국의 초고온 플라즈마 제어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윤시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연구본부장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능력이야말로 상용 발전의 경제성을 좌우하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현재 디버터를 텅스텐으로 교체하며 '1억도 300초 유지'라는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300초는 플라즈마가 완전히 안정화되는 중요한 물리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의 KSTAR 핵융합 장치 전경. KSTAR는 초고온 플라즈마 제어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또 다른 전선과 '결승 무대'…레이저 핵융합·ITER가 그리는 미래
한편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핵융합이 이미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산하 국립점화시설(NIF)은 2022년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실험에서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점화(ignition)' 달성이다.
다만 이 방식은 순간적인 에너지 방출에 가까워 연속적인 전력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기술적 격차가 존재한다.
현재 핵융합 연구의 최종 시험대로 꼽히는 것은 프랑스 카다라슈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다. 미국, 유럽, 중국, 한국, 일본, 인도, 러시아가 참여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ITER는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DEMO) 이전 단계의 핵심 실증 플랫폼이다.
ITER의 목표는 'Q=10 달성', 즉 투입 에너지의 10배를 생산하는 핵융합 반응을 구현하는 것이다. 성공할 경우 핵융합은 '가능성'이 아닌 '현실'의 에너지 산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인공태양의 아킬레스건, '불안정성'과 연료 문제
핵융합의 가장 큰 물리적 난제는 ELM(가장자리 국소 모드)이라 불리는 불안정성이다. 플라즈마 일부가 자기장을 뚫고 순간적으로 벽면 방향으로 분출되는 현상이다.
초고온 플라즈마 덩어리가 내벽에 충돌하면 재료가 손상되거나 장치 전체 운전이 중단될 수 있어, 상용화를 가로막는 핵심 위험 요소로 꼽힌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는 연료다. 핵융합에 필요한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발전소에서는 리튬을 활용해 내부에서 삼중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이 과정 역시 상용화의 중요한 기술 장벽으로 꼽힌다.
22분과 1억도, 그리고 'Q'… 에너지 질서의 재편
핵융합 발전소는 결국 '열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기존 화력·원자력 발전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열을 만드는 방식이 '핵분열'이 아닌 '핵융합'으로 바뀌는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안전성이다. 핵융합은 연쇄 반응이 없어 조건이 깨지면 즉시 반응이 멈춘다. 이론적으로는 원전 사고와 같은 '폭주' 가능성이 매우 낮은 구조다.
핵융합이 전략 기술이 된 이유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융합은 21세기 후반 전력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게임체인저"라고 평가한다.
결국 프랑스의 22분, 중국의 1000초, 한국의 1억도는 서로 다른 경쟁이 아니다. 여기에 Q값이라는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인류는 처음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태양'을 지구 위에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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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건은 어느 국가가 먼저 '시간·온도·에너지 이득'이라는 세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 인류 최초의 인공태양을 현실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순간 핵융합은 미래 기술이 아닌, 세계 에너지 질서를 다시 쓰는 현실 산업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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