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혀서 왔어요" 가방 메고 홀연히 떠나는 대학생들…'속세 탈출'
대학생들, 템플스테이·촌캉스 찾아
41개월째 취업 감소에 '자발적 고립'
무력감 달래는 '가성비 힐링' 열풍도
#. 대학생 문정민씨(26)는 최근 전국 사찰을 순례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듯 템플스테이로 향했다가 이제는 어엿한 취미가 됐다는 것이다. 예불 종소리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채 묵언의 시간을 보낸다. 문씨는 "불자는 아니지만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말했다.
#. 대학생 곽모씨(24)는 노트북 대신 소설 한 권이 담겨있는 가방을 메고 이번 주말 서울 강북구 숲이 보이는 북카페로 떠난다. 곽씨는 "취업을 준비하며 온종일 노트북으로 채용 공고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동기들의 취업 성공을 지켜보다 보니 숨이 턱 막혔다"며 "모든 것을 잠시 벗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에 정적을 찾아 떠난다"고 털어놨다.
최근 대학가에서 도심의 불빛을 뒤로하고 사찰이나 시골 마을, 깊은 산속으로 숨어드는 '자발적 고립'이 새로운 휴식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무한 경쟁으로 무력감에 빠진 청년들이 자연 속에서 얻는 '가성비' 치유를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올해 템플스테이 참가자 10명 중 4명(42%)은 2030 청년층이다. 예약률은 지난해 대비 약 30% 증가했다. 사업단 관계자는 "작년 5000명 수준이던 동시접속자 수가 올해는 3만명 이상 몰리며 서버가 다운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대학가에서는 이른바 '사찰 티켓팅'이라 불리는 예약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학생 이모씨(23)는 "기다렸던 템플스테이 신청이 단 30초 만에 마감돼 못 가게 됐다"며 "아이돌 티켓팅이나 수강 신청보다 예약이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정적을 찾는 발길은 사찰로만 향하는 게 아니다. 고요한 장소에서 온전한 쉼을 누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휴식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숲속에서 책을 읽는 '북 스테이'나 몸빼 바지를 입고 장작을 패는 '촌캉스(시골+바캉스)'의 인기도 뜨겁다.
촌캉스는 농가 일로 땀을 흘리며 잡념을 비워낸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밤이 되면 아궁이 앞에 모여 '불멍(불을 보며 멍 때리기)'을 즐기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로컬 엔터테인먼트 업타운 관계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을 고려해 기획한 5만원 상당의 2박3일 농활 프로그램은 사흘 만에 매진됐다"고 했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대학생들이 공통으로 꼽는 핵심 키워드는 고립에서 얻는 휴식이다. 혼자 촌캉스를 다닌다는 대학생 김모씨(25)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단절된 환경 자체가 주는 해방감이 크다"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면 연락에 바로 답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고민과 피로감에서 벗어난 고립의 시간이 재충전의 시간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취업난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숨 가쁜 경쟁의 굴레를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대학생들의 몸부림이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2022년 11월부터 41개월째 연속 감소세다. 3월 기준 청년층 고용률은 ▲2022년 46.3% ▲2023년 46.2% ▲2024년 45.9% ▲2025년 44.5%로 4년째 하락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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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로의 급변과 취업난 속에 청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며 "과거 골프처럼 고비용 여가를 즐기기보다 지출을 줄이면서도 심신을 다스릴 수 있는 '가성비' 힐링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대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활동을 더 늘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청년들의 사회 활동을 독려해 사회적 무력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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