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제안 등 깜깜이 공시…정보 비대칭 심화
당정, 공시제도 구조적 개편 논의 움직임
"규제 아닌, 시장 신뢰 높이는 인프라 구축"

편집자주개정 상법 시대를 맞아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법 시행에 따른 제도적 변화는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 관행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본지는 5회에 걸쳐 개정 상법이 가져올 변화와 이에 대비한 움직임, 향후 주주자본주의 정착을 위한 제도적 과제들을 짚어본다.

①개정상법 시대 열렸다…3월 주총 키워드는
②"지금이 마지막"…상법 개정에 기업들 '지배력 방어' 총력
③'주가누르기 방지법' 본격화…전문가들 "핵심은 상증세 개편"
④"결국 기관이 움직여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현실
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주주자본주의의 작동 여부를 가르는 마지막 변수는 '정보'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한, 주주권은 형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국내 공시제도는 의사결정의 맥락이 빠진 '결과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어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판단하고 문제를 제기할 핵심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제도 전반의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결과만 공개하는 한국…주주권 행사 한계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깜깜이 공시 사례가 바로 인수합병(M&A) 공시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인수 제안 단계부터 정보 공개가 이뤄지지만, 국내에서는 제안 자체부터 공시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주주들은 인수 제안이 있었는지, 이사회가 이를 어떻게 검토했는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는 "이사회가 진지한 인수 제안을 무시하거나 공시하지 않더라도 법적 리스크가 크지 않다"며 "이는 지배주주 중심의 사적 거래 관행, 전체 주주의 이익 실현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 역시 "상장사의 지배권 변동은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M&A 관행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일반주주는 철저히 배제돼있다"고 비판했다. 과거 M&A 과정에서 공개매수 없이, 지배주주 지분에만 과도하게 높은 지배권 프리미엄이 붙었던 코웨이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주자본주의]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 "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AD
원본보기 아이콘

문제는 M&A에 그치지 않는다. 자사주 처분, 내부거래, 이사회 의사결정 등 주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요 경영 사안 역시 '결과만 공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사회가 어떤 근거로 결정을 내렸는지,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등 핵심 정보는 빠진 채 의결 결과만 공개된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사회 판단 → 주주 검증'이라는 견제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반면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는 의사결정 배경, 찬반 의견, 공정가치 평가(fairness opinion) 등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이 대표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저평가 상장사에 대해 사모펀드나 경쟁사가 '진지한 인수 제안'을 하면, 이사회는 전체 주주의 이익 관점에서 이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 과정을 상세히 공시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주자본주의]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 "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원본보기 아이콘

당정 논의도 본격화…'의무화' 두고는 신중론도

국내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도 최근 개정 상법 시행에 발맞춰 이러한 공시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개정 상법이 주주권 확대에 무게를 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정보 인프라 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M&A 제안이 있을 경우 매수가격의 공정성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M&A 인수 제안에 대해 이사회가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자본의 효율적 배분과 시장 신뢰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전면적인 의무화와 관련해선 일각에서 신중론도 확인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방향성 자체는 맞다"면서도 "의무공시 확대가 능사는 아니다. 모든 것을 의무화하면 기업 부담을 과도하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요한 정보라면 자율공시를 통해서라도 시장에 제공하는 문화가 먼저 정착될 필요가 있다"며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의무공시를 확대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M&A의 경우 협상 과정에서 정보가 공개될 경우 거래 가격이나 성사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공시 범위와 시점 설정이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황정환 김앤장 지속가능성·공시자문센터장은 "공시는 정보 비대칭 해소라는 명확한 목적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해당 기업이 주요 정보를 적절히 공개했는지를 검토한다"면서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두고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AD

[주주자본주의]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 "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원본보기 아이콘

전문가들은 공시제도 개편이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한 '기초 인프라 구축'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공시는 투자자와 기업 사이의 가장 기본인 만큼, 투명성 없인 시장도 없다는 점을 인식한 개편작업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주주자본주의는 제도, 주체, 정보 등이 맞물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