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중기 잡아라" 노마진 넘어 역마진까지…은행, 연초부터 기업대출 혈투
가계대출 규제·생산적 금융 주문에 기업대출 확대
우량 중기 유치 위해 '금리 경쟁' 과열
"1%대 금리까지 등장…금리 감면 프로그램 총동원"
#지난달 A은행 본점에는 영업점들의 금리 전결권 요청이 잇따랐다. 은행들이 기업대출 영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금리 경쟁에 나서자 오랜 기간 거래해 온 우량 중소기업들이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타행이 노마진을 넘어 역마진을 감수하며 우량 기업을 빼앗아가고 있다"며 "필요하면 금리 감면 프로그램을 총동원해 고객을 방어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결국 이 은행은 역마진을 감수하더라도 기존 우량 기업 대출을 지키고 신규 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영업점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했다.
은행권이 올해 들어 기업대출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 확대를 주문하면서, 우량 중소기업을 둘러싼 '제살 깎아먹기식' 금리 경쟁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1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월 말 기준 678조743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월 말(675조5041억원)보다 3조2398억원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 12월 2조9018억원 감소했던 중소기업 대출은 올해 들어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섰다. 1월에는 1조779억원 늘었고, 2월에는 증가폭이 3조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은행별로는 신한은행이 2월 한 달 동안 1조1290억원 늘리며 가장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했다. 하나은행도 8719억원 늘리며 뒤를 이었다.
중소기업 대출 경쟁이 격화되면서 금리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신규 취급액 기준 지난해 12월 평균 4.24%에서 올해 1월 4.21%로 소폭 낮아졌다. 은행들이 우량 기업 유치를 위해 금리 인센티브를 확대하면서 경쟁이 본격화된 2월에는 추가 하락 가능성이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달금리가 2%대 후반에서 3%대 초반에 제반 비용까지 고려하면 대출금리는 더 높아져야 한다"며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선 타행이 1%대 후반 금리까지 제시한 사례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타행 거래 기업을 신속히 유치하기 위해 일단 담보 이전이 완료되기 전 기존 대출의 절반가량을 신용대출로 먼저 대환해주는 방식도 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금리 경쟁이 과열된 건 기업대출을 늘려야 하지만 우량 기업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 아래 은행들의 실적 경쟁 압박도 커졌다. 이에 은행들은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타행 거래 우량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3월 들어 경쟁 강도는 다소 완화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증된' 우량 기업을 둘러싼 금리 경쟁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어,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으로 대출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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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금융권 관계자는 "3월 들어 역마진을 감수한 중소기업 대출 경쟁은 완화됐지만 이런 방식으로 수익성을 깎아가며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자금 사정이 좋은 우량 기업 위주로만 돈이 흘러가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금융 지원을 받기 어려워지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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