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해찬의 빈자리…설 밥상에 오른 '그날의 무대'
심진석/호남취재본부 취재부장
나름 길다고 느꼈던 닷새간의 설 연휴가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경기 침체 속에 주머니 사정은 가벼워졌고, 덕담보다는 현실 정치 이야기가 밥상머리를 채웠다. 특히 불과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는 연휴 내내 빠지지 않는 화제였다.
그 가운데 유독 자주 언급된 이름이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이 전 총리는 격동의 정치사를 온몸으로 겪어 온 원로 정치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릴 만큼 현 권력 핵심과도 깊이 연결된 인물이다. 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굳이 수치로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다.
비상계엄 등 혼란의 시대를 다시 마주한 작금의 상황에서, 그의 촌철살인 같은 냉정한 조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정치 언어 속에서, 그는 드물게 '정확한 말'을 던지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영결식이 엄수되던 1월 31일, 지역 정치권은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출판기념회와 각종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단순한 슬픔을 넘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정치 원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나 분위기가 나주에서 열린 한 정치인의 입장과 소신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나주를 지역구로 둔 이재태 전남도의원은 영결식 당일 예정대로 자신의 출판기념회 행사를 강행했다.
이날 행사 무대 위에선 노래와 춤, 심지어 형형색색 가발까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던 듯싶다.
물론 이 의원의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 행사 일정은 이전에 이미 공지됐고, 정치인으로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의원 역시 이 전 총리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SNS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이 의원의 선택에 대해 '아쉽다'는 주변의 평가들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보단 명분이고, 그 명분의 경중에 따라 선택에 대한 평가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설 연휴 민심은 "굳이 그날이어야 했느냐"는 물음으로 모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정치인의 자산은 신뢰와 공감이다. 애도의 시간에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도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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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평가와 논란은 잦아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무언가의 잔상까지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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