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캐스퍼 보스만스, 완두콩으로 풀어낸 '정체성의 풍경'
3월 14일까지 글래드스톤 서울
회화·조각·벽화로 확장된 완두콩 연작
완두콩 꼬투리 안에 서로 다른 콩들이 들어 있다. 같은 틀 안에 있지만 모양과 색은 제각각이다. 벨기에 작가 캐스퍼 보스만스는 이 단순한 구조를 통해 정체성과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의 국내 첫 개인전 'Peas, Pod(완두콩, 꼬투리)'가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벽화 등 다양한 형식의 신작과 근작을 통해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전시 제목인 'Peas, Pod'는 하나의 구조 안에 서로 다른 개체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은유적 장치다.
전시장 중심에는 완두콩 꼬투리를 모티프로 한 연작이 배치됐다. 하나의 꼬투리 안에 들어 있는 콩들은 각기 다른 색과 문양으로 표현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벽화로 확장돼 전시장 내부와 외벽에 설치됐다. 작가는 "하나의 꼬투리에 다양한 콩이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정체성을 다양한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회화 작품은 '투 키즈 인 어 트렌치코트(Two Kids in a Trenchcoat)'다. 두 아이가 하나의 코트 안에 들어가 어른인 척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정체성을 숨기거나 조정하며 살아가는 상태를 은유한다.
작품 속 콩 도상에는 미국 화가 포레스트 베스와 브라질 작가 호세 레오닐손의 작업이 각각 인용돼 있다. 작가는 "나에게 영향을 준 두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청동 조각 '밴디드 브릿지(Banded Bridge)'도 함께 전시된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아치형 구조물은 두 개의 분리된 좌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보스만스는 이 작품에 대해 "다리는 서로 다른 영역을 잇는 중재의 공간으로 작동한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출품된 '레전드 페인팅(Legend Painting)' 연작에서는 사자, 수탉, 말, 타조 등 서로 다른 상징적 도상이 한 화면에 병치된다. 작가는 서양의 문장(紋章) 전통에서 착안해, 혼인과 계보를 통해 정체성이 결합·전승되는 구조를 시각 언어로 풀어냈다. 그는 "문장은 가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요소가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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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만스는 신화, 설화, 민속적 상징 등에서 차용한 기호를 특정 서사로 고정하지 않고, 관객의 해석에 열어두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그는 "의미를 설명하기보다, 질문이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며 "작품은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벨기에 롬멜 출생인 보스만스는 현재 브뤼셀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이탈리아 아르날도 포모도로 재단, 네덜란드 더 할렌, 벨기에 브뤼셀 현대미술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벨기에 명품 브랜드 델보와 협업했다. 전시는 3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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