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일 작가 디즈니+ '탁류'
조선 경강 나루에서 오늘을 비추다

디즈니+ '탁류' 스틸 컷

디즈니+ '탁류' 스틸 컷

AD
원본보기 아이콘

조선의 경강(京江·한강)은 한때 희망의 물줄기였다. 배가 오가고 장사가 번성하면서 사람들이 내일을 꿈꾸었다. 디즈니+ 드라마 '탁류'에서는 다르다. 물살이 희망이 아닌 권력과 탐욕을 실어 나른다.


특히 나루는 포도청과 왈패의 결탁으로 타락했다. 짐 내리는 순서를 바꾸면 '급행세', 일감을 받으면 '간택세', 밤에 불을 밝히면 '횃불세'를 부과한다. 관리들은 묵인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다.

사람들은 불합리한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저 없이 더러워진다. 나루터 일꾼 시율(로운)과 장사꾼 최은(신예은), 청렴한 관리 정천(박서함)은 다르다. 각자의 방식으로 탁류 위를 걷는다.


디즈니+ '탁류' 스틸 컷

디즈니+ '탁류'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강은 흐르지만, 인간은 씻기지 않는다

시율은 왈패들이 삯을 가로채자 그들을 두들겨 팬다. 왈패 무덕(박지환)은 약점을 빌미로 협박해 그를 자신의 수하로 만든다. 원치 않게 왈패가 된 시율은 일꾼들의 삯을 올려주는 등 기존 질서를 뒤흔든다.

최은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왈패들의 부당 행위에 선을 그어 충돌한다. 평민이자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지만 쉽게 위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사를 이어가려면 왈패와도, 탐관오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흔들린다.


정천은 좌포도청 종사관으로 부임해 부정부패를 처단하려 하지만, 매번 선배 종사관 이돌개(최귀화)에게 가로막힌다.


천성일 작가는 2010년 '추노'에서 인간의 자유를 탐구했다. 노비들이 자유를 찾아 도망간다. 그것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탈주였다면, '탁류'에서는 욕망과 생존의 굴레다. 모든 인물이 회색 지대에 갇혀 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디즈니+ '탁류' 스틸 컷

디즈니+ '탁류'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무덕이 왈패 '엄지' 자리에 오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친구이자 마포나루 최고 왈패인 덕개(최영우)가 시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무덕은 시율이 다리 힘줄을 잘릴 위기에 놓이자 낫을 들고 달려들어 덕개의 다리를 찍는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덕개는 "호랑이 등에 잘 올라타 보라"며 마포나루를 떠난다.


이 장면에는 의리와 배신, 우정과 야망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덕개는 다리를 잃고도 무덕을 용서한다. 무덕은 친구를 배신하고 엄지가 된다. 시율은 원치 않았지만, 권력의 중심으로 끌려간다. 누가 선이고 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살아남으려면 더러워질 용기가 필요하다. '추노'가 이상을 향해 질주했다면, '탁류'는 바닥을 응시한다. 버텨내기 위해 기꺼이 손을 더럽힌다.


디즈니+ '탁류' 스틸 컷

디즈니+ '탁류'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희망 없는 나라, 결국 무너진다

'탁류'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갈등이 해소될 즈음, 멀리서 봉화가 피어오른다. 왜군의 배가 조선을 향해 다가온다. 임진왜란의 예고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제시가 아니다. 백성에게 희망 대신 오늘만을 강요한 나라가 맞이한 필연적 결말이다.


결국 '탁류'가 그린 경강 나루는 썩어 가는 조선의 축소판이었다. 권력은 부패했고, 제도는 무너졌으며, 백성은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서로를 짓밟았다.


디즈니+ '탁류' 스틸 컷

디즈니+ '탁류'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회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구성원에게 버텨야 한다는 각오만 남는다. 이는 오늘을 향한 경고처럼 읽힌다. 공정과 정의보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내일보다 오늘을 버티는 데 급급한 사회. '탁류'가 보여주는 조선의 파국은 결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AD

그래서 제목은 시대의 더러움을 가리키면서도, 인간의 회색 지대를 인정하라는 선언과 같다. 이제 희망은 순결한 빛이 아니다. 탁류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남으려는 얼굴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