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까삐땅학회 학술대회
AI시대 민사법의 방향 모색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AI)에 대한 민사책임 문제를 기존 법체계의 조정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 모인 법학자들은 과실이나 인과관계의 입증이라는 구조적 장벽이 피해자 구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1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2025 앙리까삐땅학회 세계대회’ 개회식. 법률신문

16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2025 앙리까삐땅학회 세계대회’ 개회식. 법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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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강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6월 16일 열린 '2025 앙리까삐땅학회 세계대회(Journees Internationales Henri Capitant 2025)'에 참석해 "대다수 국가가 AI로 인한 위험에 대해 기존 법체계로 대응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면적 법률 체계를 도입한 국가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이날 '인공지능과 민사책임'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최근 EU(유럽연합)의 AI 법(AI Act) 등이 향후 입법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EU의 AI 법은 민사책임을 직접 규정하지는 않지만, 위험 기반 분류, 투명성, 설명 가능성, 문서화 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향후 민사책임 판단 시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과실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인공지능의 결정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 과실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고 교수는 "지금까지 AI의 오류는 설계 오류, 편향된 데이터, 부실한 감독 등 인간의 과실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고 분석하며 "이때 '주의의무(duty of care)' 준수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향후 그 기준은 AI 법이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과실이 손해의 직접적 원인인지를 따지는 '인과관계 입증'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도 전망됐다. AI 금융 자문 알고리즘이 왜 잘못된 판단을 했는지와 같은 문제를 명확히 규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법학자들이 보기에 AI는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를 도출하는지가 불투명하고 ▲인간의 직접 명령 없이 스스로 학습하며 ▲다양한 시스템과 연결돼 있어 사실상 입증 불가능성의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러한 AI의 불투명성, 자율성, 복잡성이 민사책임법의 근본을 흔드는 3대 요소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과실 및 인과관계 입증 부담은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AI로 인한 피해를 입었더라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법학자들은 '과실 또는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을 통해 입증 책임을 사업자가 반증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법적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피해자가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 공개 명령을 통해 사업자에게 기술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함께 언급됐다. 다만 면책 사유의 범위, 복수의 책임 주체 간 최종 책임의 범위 등에 대한 공정한 기준 정립 필요성도 강조됐다.

고 교수의 종합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콜롬비아, 칠레,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각국 대표단이 다양한 의견을 공유했다.


6월 17일에는 라즈반 딘카(Razvan Dinca) 부쿠레슈티대 법학부 학장이 '인공지능과 저작권'을 주제로 토론을 이끌었다. 그는 "AI, 데이터, 그리고 그 결과물에 적용되는 보호 체계와 관련된 이해관계와 쟁점은 복잡하고 때로는 상충되기도 한다"며 "세계 각국은 생성된 콘텐츠에 대한 권리 귀속을 명확히 하고 보호, 혁신, 자유, 책임 사이의 균형을 확보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에는 △AI와 리걸테크 및 응용 △AI와 사법 △AI에 의한 형사범죄 △AI와 차별 △예측 경찰과 기본권 △한국의 AI 기본법과 경제적 효과 △사이버보안과 AI △산업에서의 AI △AI 관련 사전 예방 조치 등 9개 주제를 두고 분과토론(아틀리에)이 열려 심층 논의가 이어졌다.


한불민사법학회(회장 이은희)가 앙리까삐땅학회(Association Henri Capitant)와 공동 주관한 이번 대회는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개최됐다. 1935년 설립된 국제 법학 학회인 앙리까삐땅학회는 매년 6월 세계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은 2012년 학회에 가입해 한불민사법학회가 한국 지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약 25개국에서 16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중 해외 참가자는 140명가량이었다. 개회식에는 이은희 한불민사법학회장, 필립 뒤피쇼(Philippe Dupichot) 앙리까삐땅학회장, 필립 베르투(Philippe Bertoux) 주한프랑스대사와 신숙희(56·사법연수원 25기) 대법관,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했고, 기조 강연은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NAVER Cloud) 인공지능센터장이 맡았다.


신숙희 대법관은 "법은 기술적 진보를 단순히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 가능한 법적 문제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기술 환경 속에서 우리 민사법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학수 위원장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과 창작, 의사결정 영역까지 확장되며 기존 법질서와 개인정보 보호에 중대한 도전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AI와 개인정보보호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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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연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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