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바이오 등 직접 투자
MB정부 때 '사내유보금' 해결 위해 첫 구상
박근혜정부에서 프로젝트 무산
김병환 금융정책 고민 담긴 '첨단산업기금'
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로 조성하는 '첨단산업기금' 규모와 적용 대상에 이목이 쏠린다. 국책금융기관을 통해 배터리, 바이오 등 국내 주력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 활력 제고'를 강조하며 오랫동안 고민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17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금융위는 오는 3월 '첨단산업기금 신설안'이 담긴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최소 34조원 규모의 기금은 국책금융기관이 전략적 산업에 지분 투자, 공동 투자, 저리 대출 등의 방식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첨단산업기금 조성의 숨은 공로자는 김병환 금융위원장이다.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발표한 국내 기업 지원책이지만, 시작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4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과장이던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이동했다. MB정부 시절 주요 이슈는 사내유보금이었다. MB정부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법인세를 인하했는데, 경제 활력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사내유보금이 증가한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사내유보금 문제를 '리스크'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기업들은 신사업 진출 시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커지는 점을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사내유보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책금융기관과 같은 퍼블릭 섹터에서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해야 한다. 투자 불확실성을 낮춰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첨단산업기금의 모태가 되는 펀드를 처음 구상한다. 한국산업은행은 후순위, 국민연금은 선순위, 기업도 참여하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중요시하던 국민연금이 반대하면서 펀드 조성은 난관에 부딪혔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2009년 프랑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책분석관으로 파견가면서 펀드 운영은 결국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사내유보금 문제는 다시 주요 경제 이슈로 부상한다. 2009년 법인세 인하 당시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조6000억원에서 2015년(1분기) 612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시 대두됐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유인하려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김 위원장이 다시 정책을 구상한다. 이번엔 국민연금을 제외하고 산업은행과 함께 기금 프로그램을 조성하지만, 기업들이 소극적이었다. 국책금융이 직접 투자할 경우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어 전환사채(CB) 위주의 투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은 "기존 정부의 기업 지원책과 큰 차이가 없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해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김 위원장은 재계와 국책금융기관의 의견을 직접 청취했다. 그가 이때 자주 했던 말이 "정부 프로그램이 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였다고 한다.
2022년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들어간 김 위원장은 미흡했던 정책들을 보완해 첨단산업기금의 청사진을 다시 그린다. 기존 방식처럼 산업은행이 지분 투자 방식으로 참여하면 위험가중치를 400%까지 상향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본확충이 필요하고, 산업은행의 건전성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법을 개정해 기금을 설립한 이유다.
또 보조금 대신 투자 방식을 다양화했다. 산업은행이 직접 기업과 함께 공동 투자에 나설 수 있고, 저리로 대출을 해주거나 지분 투자 등으로 지원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첨단산업기금을 설립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재계 관계자는 "배터리 등 주요 산업이 전반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이 나왔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세부 사항도 빨리 확정하고, 최대한 많은 기업이 필요한 지원을 발 빠르게 받도록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급하게 만든 정책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배터리 업계 등 산업계와 소통을 긴밀하게 한 뒤 내놓은 정책"이라며 "저리대출, 연구개발(R&D), 구매대출 등 지원 방안이 다양한 점도 배터리 업계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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