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준비해 연초에 먹는 도시락
장수·번영 기원하는 각종 재료 넣어 만들어
민족 대명절 설날입니다. 저도 연초에 바쁜 일정을 보내서 그런지, 긴 연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간만에 친척들 얼굴도 볼 수 있겠군요.
설날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게 떡국이죠. 우리나라 새해 떡국에는 가래떡처럼 길게 살고, 썰린 떡처럼 돈 많이 벌고, 흰 국물처럼 깨끗하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처럼 새해 먹는 음식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있는데요.
우리나라처럼 음력 설은 지내지 않지만, 옆나라 일본에서도 1월 1일에 꼭 먹는 새해 음식이 있답니다. 여러 칸의 도시락에 음식이 나눠 담긴 이 요리, 언젠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은 일본의 새해 음식 오세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세치는 층층이 쌓인 도시락에 검은콩, 새우 등 각종 요리를 담아낸 것인데요. 동아시아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축하하고 신에게 이를 감사하는 중국의 명절을 따와서 지냈습니다. 이때 신에게 바치는 귀한 음식을 '御節供(오세치쿠)'라고 불렀다고 해요. 오세치쿠는 명절이나 각종 절기에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궁중 행사 음식이었던 오세치쿠는 에도시대부터 서민들도 먹기 시작했다고 해요. 5개의 절기를 공식 행사로 막부가 제정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원래 새해 첫날인 1월 1일, 단오, 칠석, 중앙절 등 다섯 날 모두가 오세치쿠를 먹을 수 있는 날이었는데 이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해의 시작, 1월 1일에 먹을 수 있는 것만을 '오세치'로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특히 오세치의 경우 불을 쓰지 않고 도시락만 먹으면 되는데, 일본에서는 좋은 날 칼을 쓰는 것은 인연 등을 끊어낸다는 의미가 있어 피한다고 해요. 또 연말연시에는 부엌에서 불을 쓰면 안 된다는 속설도 있죠. 불의 신을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또는 새해 첫날부터 화재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등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칼과 불을 쓰지 않고 연말에 준비해둔 것을 연시에 먹는 오세치가 새해 음식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정석은 5단짜리 찬합에 칸칸이 음식을 넣어 담는 것인데요. 이렇게 찬합에 담는 이유는 '복이 겹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도 있고요, 무엇보다 먼지와 벌레로부터 음식을 지키고 보존하기에 이 형태가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답니다. 음식을 담고 쌓기만 하면 되니 들어가는 많은 요리를 손 덜 가게 준비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해요.
맨 위쪽 단에서부터 1층부터 5층까지 세는데, 각 단마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데다가 들어가는 요리도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위쪽 단은 '축하에 맞는 요리'라는 뜻으로 '이와이자카나(祝い肴)'로 부르고, 두 번째 단은 해산물 등 고급 식자재를 담은 메인 요리, 세 번째 단은 식초를 사용해 쉽게 상하지 않게 만든 요리, 네 번째는 냄비에 조린 요리가 들어가는데요. 맨 아래 다섯번째 단은 비워놓습니다. 앞으로 채워가며 발전하라는 의미도 있고, 신이 주신 복을 담아야 하니 비워놓는다는 뜻입니다.
재료마다 의미도 다른데, 자손번영을 의미하는 청어알,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비는 검은콩, 풍작을 기원하는 말린 멸치 요리, 금전운을 부른다는 밤을 으깨 만든 '쿠리킹통', '운이 열린다'라는 의미로 삶은 우엉을 방망이로 양념에 무친 요리, 생선을 다시마로 말아 삶아 만든 다시마 말이 등은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수염이 길어지고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장수하라는 의미로 새우가 들어가고요. 같은 의미로 도미와 전복도 넣습니다. 도미가 다른 생선보다 오래 살고, 전복은 20년 정도 산다는 점을 알고 계셨나요? 하여튼 장수와 함께 귀한 식자재들을 함께 담습니다. 일출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로 가마보코도 넣고요. 연근, 토란, 죽순 등 다양한 야채들도 들어갑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오세치에 들어가는 요리는 수십 가지가 되는데요.
특이한 점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여기에 혹시 빠져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눈치채신 분 있나요? 바로 육류가 없는 건데요. 이처럼 돼지나 소와 같은 네발짐승을 사용한 요리는 오세치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요.
솔직히 준비할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 요리들인데요. 집에서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다 보니 11월 정도가 되면 백화점 푸드코트 같은 데서 오세치 예약을 받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예약받더라고요. 편의점에서 예약하면 집으로 배송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사실 이 전통도 현대에 맞게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해요. 요즘은 5단까지 먹을 정도로 가족이 많지 않은 데다가, 일본은 홀수가 복을 상징한다고 하기 때문에 3단 정도로 줄이는 집도 많고요. 찬합에 넣지 않고 식탁에서 온 가족이 나눠 먹는 집도 늘었다고 해요.
여하튼 새해 음식은 항상 손이 가고 정성이 들기 마련이네요.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고 복을 함께 나누는 문화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가 봅니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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